갈등의 씨앗이 된 주주간 계약 재협상
민희진 풋백옵션 배수 13→30배 요구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제가 제대로 대우 받고 있다고 보세요?” (민희진 어도어 대표 기자회견)
‘경영권 탈취’ 의혹에서 시작해 ‘뉴진스 카피’ 논쟁, 기형적 K-팝의 민낯까지 낱낱이 들추고 있는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격돌 이면에 ‘돈의 전쟁’이 있었다. 크고 작은 갈등의 씨앗에 불을 지핀 것은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한 뉴진스의 성취를 두고 오간 ‘보상’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30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따르면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지난달까지 주주간 재계약 협상을 이어왔다. 양측은 어도어의 지분 가치 산정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이브는 앞서 지난해 3월 민 대표에게 어도어 지분 20%를 약 35억원에 양도하는 주주간 계약을 맺었다. 민 대표는 이 중 2%를 어도어 경영진에게 양도했다.
갈등은 지난해 12월 시작됐다. 민 대표 측이 주주간 계약 재협상을 요구하면서다. 민 대표가 주주간 계약 체결 1년도 되지 않아 개정을 요구한 것은 뉴진스의 세계적인 성공에 대한 보상 차원이었다.
기존 계약에 따르면 민 대표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13.5%를 풋백옵션을 통해 13배 배수로 하이브에 넘길 수 있다. 그러나 민 대표가 요구한 것은 풋백옵션 상 배수를 30배로 올리는 것이었다.
어도어는 설립 2년 만이었던 지난해 매출 1103억원, 영업이익 335억원을 기록했다. 기존 계약대로라면 영업이익 335억원에 13배를 적용해야 하나, 30배를 적용할 경우 민 대표에게 돌아가는 지분 가치는 기존 1000억원에서 2400억원~2700억원으로 뛰어오르게 된다.
여기에 민 대표는 나머지 4.5%에 대해서도 풋백옵션을 적용해달라고 요청했다. 민 대표 측은 이에 대해 “하이브와 이상한 계약을 맺었다”며 해당 지분을 마음대로 되팔 수 없어 ‘경업급지’ 조항으로 인해 ‘노예 계약’에 얽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민 대표 측은 제3자에게 매각할 때 하이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이브는 4.5% 지분에 대해서는 풋백옵션 적용은 수용했으나, 30배수에 달하는 기업가치 상향은 과도한 요구라고 봤다. 반면 민 대표 측은 뉴진스가 거둔 성취를 근거로 ‘합당한 보상’이라는 입장으로 맞서 양측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앞서 기자회견에서도 민 대표는 “엔터 업계 30년 역사상 2년 만에 이런 성과를 낸 사람은 없다”고 했다.
두 거물의 ‘돈의 전쟁’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도 엇갈린다. 적절한 보상이라는 의견과 과도한 보상이라는 견해다.
‘적절한 보상’이라는 입장의 근거엔 뉴진스의 빠른 성장 속도가 자리하고 있다. 업계에선 뉴진스가 기존 K-팝 그룹보다 최소 3년 가량 빠른 수준으로 세계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뉴진스는 기존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트와이스와 같은 빅그룹이 이룬 미국 스타디움 투어 등의 활동을 데뷔 5년차에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뉴진스의 성장 과정을 볼 때 어도어는 빠르면 내년, 늦어도 2026년 연간 영업이익 10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본다”며 “이 경우 어도어의 적정 가치는 2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과도한 보상’이라는 입장에도 어도어와 뉴진스의 성장이 근거가 되고 있다. 한 엔터업계 관계자는 “현 시점과 달리 2024년 이후 어도어의 영업이익은 수백 억 올라갈 텐데, 이를 30배로 계산하면 3000~4000억원은 족히 된다” 며 “하이브의 입장에선 과도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획사 관계자들에겐 하이브와 민 대표 간의 ‘보상 전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인지도 있는 신인 그룹을 보유하고 있는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그룹 하나를 제작해 음반 20만 장, 여기에 음원 스트리밍이 더해져야 20억원 가량의 매출을 낼 수 있는데, 이조차 벌기 힘든 경우도 많다”며 “이런 상황에 3000~4000억원이 오르내리는 보상론엔 상실감만 커진다”고 했다.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 사이의 갈등은 이달 초 수면 위로 올라왔다. 민 대표가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의혹을 제기하며 문제 삼았고, 하이브는 22일 민 대표의 ‘경영권 탈취’ 의혹을 주장하며 감사권을 발동했다. 해당 의혹에 대한 정황 증거를 차곡차곡 확보한 하이브가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자, 민 대표는 공식 기자회견으로 즉각 반박했다.
하이브는 당초 30일 어도어 이사회를 요청했으나 민 대표 측이 불응하며 무산됐다. 앞서 지난 25일 하이브는 어도어의 임시 주주총회 소집 허가 신청을 법원에 접수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의 허가 판단이 나오기 까진 통상 4~5주가 걸린다. 허가할 경우 당일 임시주총 소집이 통지, 15일 뒤 임시총회가 열린다. 이르면 6월 중순~말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