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수면제 등 향정신성의약품과 필로폰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야구 선수 오재원(39)이 후배 야구 선수들에게 수면제를 대리처방받아 달라고 요구해, 오재원이 뛰었던 두산 베어스 소속 선수 8명이 대리처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오재원이 후배 선수들을 폭행하고 협박하며 수면제를 타오라 강요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23일 KBO 사무국에 따르면, 두산 소속 선수 8명이 오재원에게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 건넨 사실을 2주 전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신고해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두산 구단은 오재원의 문제가 불거진 3월 말께 자체 조사를 진행해 관련 사실을 파악했다. 오재원이 현역으로 뛰던 2021년과 2022년 구단 소속 선수들에게 대리 처방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에 연루된 두산 선수들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주로 2군 선수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이 오재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것은 폭행과 폭언으로 인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후배들에게 후배들에게 대리 처방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면서 “(수면제를 받아오지 않으면) 칼로 찌르겠다” “팔을 지져 버리겠다” 등의 협박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진 신고한 8명 중 A선수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오재원은) 팀에서 입지가 넓은 선배이고 코치들도 함부로 못 하는 선수였다. 밉보였다가 선수 생활에 타격이 올까 봐 걱정했다”며 “거절하니 불려 나가 정강이를 두세 번 맞았다. 뺨을 툭툭 치면서 ‘잘하자’는 얘기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오재원은 두산에서 20여년간 선수생활을 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팀 내에서 입지가 굳건했을 뿐만 아니라 팬도 많이 거느리고 있어 후배 선수들이 오재원의 말을 거스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오재원은 지난 17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 협박 등), 주민등록법 위반, 특수재물손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검찰에 따르면, 오재원은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고 2023년 4월에는 지인의 아파트 복도 소화전에 필로폰 약 0.4g을 보관한 혐의를 받는다. 또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89차례에 걸쳐 지인 9명으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인 '스틸녹스정'(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 2천242정을 수수하고 지인의 명의를 도용해 스틸녹스정 20정을 매수한 혐의도 있다. 그는 혐의를 대체로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재원은 또 지인이 자신의 마약류 투약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지인의 휴대전화를 망치로 부수고 멱살을 잡는 등 협박한 혐의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