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국경제인협회 공동 기획
금융자회사 폭스바겐 파이낸셜 서비스
자회사 통해 고객에 다양한 서비스 제공
한국 대기업 금융사는 의결권 행사 못해
‘금융 서비스+핀테크’ 등 혁신 유인 떨어져
한경협 “글로벌 스탠더드 맞춰야” 건의
법 개정 예고, 22대 국회서 논의될 듯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드림카’ 브랜드를 줄줄이 보유한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그룹(Volkswagen AG). 그런 폭스바겐이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온라인 여행 예약·관리 서비스까지도 제공한다?
폭스바겐이 100% 지분을 보유한 금융자회사 폭스바겐 파이낸셜 서비스는 자회사를 통해 고객에게 다양한 차량 금융, 임대 및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자동차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차량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트럭 및 승용차 렌트, 자동차 공유,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온라인 중고차 플랫폼인 헤이카도 운영한다.
실제 폭스바겐 파이낸셜 서비스는 차량 관리 서비스 업체 플릿 컴퍼니의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고차 딜러 회사인 모빌리티 트레이더의 대주주기도 하다. 또, 자동차 판매 회사인 비히클 트레이딩 인터내셔널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폭스바겐 파이낸셜 서비스는 부동산 회사인 볼림 폭스바겐 임모빌리언도 100% 자회사로 보유했다. 이를 통해 폭스바겐이나 아우디 대리점에 건물, 토지 등 부동산을 임대해주는 식이다.
또 다른 100% 자회사 보야와 선힐 테크놀로지스는 각각 온라인 여행 관리 서비스와 휴대전화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보야의 경우 기업 고객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채팅 등을 통해 여행을 예약하면 여행 관련 청구, 회계 프로세스, 보고, 여행 관리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선힐 테크놀로지스는 주차, 충전 인프라, 대중교통에서 사용되는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 ‘트라비페이’를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폭스바겐 파이낸셜 서비스는 단순 차량 금융을 넘어 전방위로 다양한 서비스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국내서는 이러한 사업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제25조 제1항)에 대기업(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업을 영위하는 회사는 국내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기 때문이다. ‘금융·보험업을 영위하기 위해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하는 경우’나 임원의 선임·해임·합병 등 특별한 경우에만 특수관계인과 합산해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폭스바겐 파이낸셜 서비스에 대입해본다면, 다수의 자회사들이 ‘자동차 수리업’, ‘중고차 판매업’, ‘부동산 임대 및 공급업’, ‘소프트웨어 자문, 개발 및 공급업’, ‘사업지원 서비스업’ 등 ‘비금융·비보험 업종’으로 분류돼 100% 지분을 가지고 있더라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대기업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실질적으로 시장경쟁을 제한하거나 독과점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이를 제한하거나, 이해당사자 사이 소송에 의해서만 제한된다.
일본의 경우 과거 일정 규모(자본금 350억엔 이상, 순자산 1400억엔 이상) 이상의 회사가 국내 회사 주식을 취득하는 것을 금지했으나, 이미 20년 전인 지난 2002년 독점금지법을 개정하며 해당 내용을 폐지한 상태다.
실제 미쓰비시 그룹은 사모펀드 계열사 마루노우치 캐피탈을 통해 비금융 자회사 3곳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판매·판촉·마케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베스트 프로젝트 홀딩스 외에도 너도밤나무 버섯 등 농산물을 생산·판매하는 미스즈 라이프, 슈퍼마켓을 소유·운영하는 미우라야 주식회사 등이다.
또, 토요타의 100% 자회사 토요타 파이낸셜 서비스 코퍼레이션도 자회사를 통해 자동차 판매와 금융서비스 외 인터넷 인프라, 응용 소프트웨어 및 호스팅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1년 ‘포춘 500’ 기업 중 265위를 차지한 미국의 방위산업(방산) 기업 텍스트론 역시 마찬가지다. 텍스트론이 지분 100%를 보유한 금융부문 담당 자회사 텍스트론 파이낸셜은 금융회사임에도 골프장, 리조트, 채권추심, IT 기반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회사들을 두고 있다. 때문에 국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는 대기업 소속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투자 대상 회사의 업종이 ‘금융·보험업’으로 제한돼있다 보니,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라도 진출에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혁신 서비스를 내놓을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대표적인 예가 핀테크 업종이다. 일례로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대기업 집단 소속 인터넷전문은행들이 통신·전기·가스 납부 등의 비금융 정보로 중금리 대출 상품을 만들겠다고 핀테크 회사를 인수하더라도 비금융·비보험 업종으로 분류돼 의결권 행사는 불가능하다.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보험업’이 아닌 신용평가업, 세무대리서비스, 가상자산거래소(응용 소프트웨어 공급업) 등 금융유관업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신규 투자에 제한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과거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3사가 공동으로 비금융 신용평가(CB)사 설립을 추진했으나 2020년경 한차례 무산됐던 것도 공정거래법의 의결권 제한 이슈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국회서 열린 ‘인터넷은행 5주년 기념 토론회’에서도 여은정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가 “핀테크업종 범위의 확대 및 금산분리 규제 개선을 통한 금융혁신 정책방향에 부합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상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 조항에 대해 넓은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공정거래법 개정을 예고한 상태다. 공정위는 올해 초 업무계획을 통해 대기업 집단제도 개선의 일환으로 대기업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예외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보험업’으로 규정된 예외 조항을 금융산업의 변화에 맞춰 결제, 보안, 소프트웨어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이 경우 삼성화재, 한화생명, 카카오페이 등 대기업 금융보험사의 핀테크 기업 투자 및 인수가 늘어나 기존 금융서비스와 핀테크 기술 간 시너지가 커지고 소비자 편익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법 개정 사항인 만큼 구체적인 개정 내용과 확대 범위는 제22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한경협은 지난 2월 대기업 소속 금융사 의결권 제한 등을 포함해 규제완화가 필요한 공정거래 분야 20대 정책과제를 공정위에 건의하기도 했다. 한경협 측은 과거 인터넷전문은행이 별도 자회사로 비금융 CB사 설립을 추진했다가 보류한 사례를 언급하며 “대기업 집단 소속 금융사들은 핀테크 회사를 인수해도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하므로, 핀테크 회사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 유인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그동안 공정거래법은 경쟁 촉진보다 대기업 규제에 치중하면서,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며 “경제활력 촉진을 위해 40년이 다 돼가는 대기업집단 규제를 현실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재조정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정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