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어떤 식수를 드시고 계시나요? 6년 차 1인 가구인 저도 이른바 생수, ‘먹는 샘물’을 먹는데요. 매번 사 먹는 값도 만만치 않은 데다 한 병 한 병 비울 때마다 페트병 쓰레기가 나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매일매일 마셔야 하는데 기왕이면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물은 없는 걸까요? 쓰레기도 전혀 나오지 않는 데다 공짜로 마실 수 있는 물이 사실 가까이에 있습니다. 바로 수돗물입니다.
환경부나 상수도본부, 관련 교수들까지 여러 전문가들은 수돗물을 바로 마셔도 된다고 권합니다. 정수 처리와 품질 검사 등을 통해 바로 마셔도 인체에 무해하다고 검증됐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환경부 등에서는 수돗물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수질 검사를 무료로 해주고 있었습니다.
물만 마셔도 나오는 쓰레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직접 수질 검사를 받아봤습니다. 제 집의 준공연월일은 2004년 4월, 만 20년이 다 돼 가는 400세대 규모의 공동 주택입니다. 수도 배관이 노후 돼 식수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지난 25일 ‘아리수 품질 확인제’ 점검을 받은 결과 ▷탁도 ▷잔류염소 ▷pH(산도) ▷철 ▷구리 등 5가지 항목에서 모두 ‘기준 이내’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5가지 항목은 현장에서 간단하게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척도입니다. 즉,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을 마셔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수돗물 수질 검사는 수돗물을 손가락 세 마디 길이의 투명한 병에 담은 뒤, 각 검사 항목 별 시약을 넣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가령 염소가 기준치보다 많이 남아 있을 경우 분홍색으로, 철이나 구리가 많을 경우 각각 갈색과 보라색으로 물의 색이 변한다고 합니다.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각 검사 기기에 넣어 물병에 빛을 투과하는 방식으로 정확한 수치를 확인합니다.
잔류 염소는 소독제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물의 안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적절한 농도는 ℓ당 4.0㎎ 이하입니다. 잔류 염소 농도가 낮을수록 안전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잔류 염소 농도가 0.1㎎ 이하로 내려가면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어, 이 이상으로 유지돼야 수돗물의 소독 능력이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수돗물 냄새’는 이 염소에서 비롯됩니다. 염소 농도가 0.1㎎ 이상이면 개인 차에 따라 냄새를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몸에는 해롭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수질 검사를 진행한 강태수 서울아리수본부 강서수도사업소 주무관은 “염소는 미생물을 소독하면서 우리 몸에 들어갔을 때 해롭지 않은 성분”라며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아직 대체할 소독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pH도 잔류 염소와 마찬가지로 물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지표입니다. 5.8~8.5의 약알칼리를 띄면 기준을 충족합니다. 미생물이 증식할 경우 물이 산성이 돼 pH가 5.8 밑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수돗물의 pH가 기준치를 초과하는 경우 가장 먼저 의심해봐야 할 곳은 거주하는 건물의 저수조라고 합니다. 세대 수가 적은 건물의 경우 각 가정으로 수돗물이 직수로 연결되지만, 많은 세대가 사는 건물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수돗물을 다량 비축해두는 저수조가 있습니다. 이 저수조 관리가 잘 안 돼 미생물이 증식하면 pH가 기준치보다 낮아질 수 있습니다.
혹은 수돗물을 빨리 쓰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대 수와 수돗물 사용량 등을 고려해 저수조를 설계하는데요. 수돗물이 저수조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 염소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습니다. 잔류 염소 농도가 낮아지면 역시 미생물이 증식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외에 탁도(물의 맑고 탁한 정도)와 철, 구리는 수도관의 노후 상태를 확인하는 항목입니다.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붉거나 누런 물이 쏟아졌던 기억이 수돗물에 대한 나쁜 인상을 남겼지요. 이는 과거 비내식성 수도관(아연도강관)으로 지어진 주택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1994년 4월 이후 준공된 건물에는 녹물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강태수 주무관은 “수돗물에 실제로 문제가 발생해 수질 검사를 의뢰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안심하고 수돗물 마시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수질 검사 기준을 대부분 충족하지만, 만약 기준을 초과할 경우 원인을 최대한 파악해드린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보다 안전하게 수돗물을 마시려면 상수도에서 보낸 온도 그대로 유지돼 있는 냉수를 마시는 게 좋다고 합니다. 온수 배관은 아무래도 부식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요.
수돗물에 대한 의문은 10여 분 가량의 검사를 통해 바로 해소됐습니다. 수돗물을 채취하고 검사하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니 적어도 우리집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바로 마셔도 된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수돗물 수질검사를 받는 가정이 서울시에만 2022년에는 11만5000건, 지난해(11월 기준)에는 20만6000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돗물을 바로 마시는 경우는 극히 드문 편입니다.
우리나라 수돗물의 직접 음용률은 5% 가량입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7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51%가 수돗물을 아무런 가공 없이 마시고 있다는 점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치죠.
이처럼 수돗물을 먹지 않는 문화는 생수 소비로 이어집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연간 소비된 생수 페트병만 56억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배관과 저수조의 사정이 다를 수 있으니 모두가 수돗물을 마시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생수와 정수기 등에 의존도가 너무 높으니 건물이 노후되지 않은 경우 수돗물을 그대로 마셔도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입니다.
맹승규 세종대 자연형 수처리 연구실 교수는 “수돗물은 녹물, 즉 중금속로 많이 지적 받는데 그보다 인체에 해로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라며 “미생물적으로 보면 수돗물이 정수기나 생수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최근 라벨을 붙이지 않은 생수가 많은데 이 경우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더 제한되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