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 위원장 “기업들 AI 워싱 하지마라”
AI 관련 없어도 마케팅 과정서 ‘AI’ 단어 오남용
AI 자체에 대한 소비자·투자자 불신 키워…업계 전체 타격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인공지능(AI) 탈을 씌운 허위 마케팅, 절대 하지 마라.”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5일(현지시간) 뉴스전문매체 더 메신저 주최 컨퍼런스에서 기업들에게 이같은 경고를 날렸다. 그는 기업들에게 위장 환경주의를 뜻하는 ‘그린 워싱(Green-washing)’을 빗대 ‘AI 워싱(AI-washing)’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SEC가 AI를 내세워 혁신 상품처럼 포장한 펀드상품 단속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 산업을 불문하고 AI가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이른바 ‘AI 워싱’이 시장과 산업계의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AI 트렌드에 편승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기업들이 ‘AI’란 단어를 마케팅 과정에 마구잡이로 사용하며 소비자와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트리면서다.
외신 등에 따르면 ‘AI 워싱’은 AI와 별 관련이 없음에도 AI 기반의 제품과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기업의 부정직한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업이 근거없는 친환경 지속가능성을 주장하는 ‘그린 워싱’처럼, ‘AI 워싱’ 역시 기업이 대중에게 근거없는 AI 주장을 펼치는 것을 말하는 업계의 비공식적 용어”라고 설명했다.
포브스는 “경쟁이 가득한 시장에서 AI를 사용했다는 주장만으로도 진보되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면서 “더불어 제품이나 브랜드에 AI란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단기간에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매출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어느 부분에 AI기술이 사용됐는지 알 수 없는 칫솔제조사의 ‘AI 칫솔’ 홍보나, AI 기술로 보행 속도를 향상시켰다는 신발 광고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매체는 소개했다. 이어 “AI 워싱으로 회사의 평판이 무너지고 매출 부진이 심화할 수 있다”면서 “기술을 사용하고 구현하는 것에 대한 투명성이 훼손되면서 잠재적 투자자들을 단념시킬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미 정부도 업계에 만연한 ‘AI 워싱’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앞서 지난 2월 기업들에게 AI 기반 제품의 성능 과장 광고를 비롯해 AI 기술 접목 자체를 조작하는 허위 마케팅에 ‘경계령’을 내리기도 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겐슬러 위원장이 직접 ‘AI 워싱’을 언급하고 나선만큼 조만간 SEC가 사정의 칼을 휘두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SEC가 변호사들과 ‘AI 워싱’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미 SEC는 친환경 이슈나 사회·지배구조 문제와 관련이 없음에도 관련 이름을 포함시킨 ‘그린 워싱’ 펀드에 대해선 단속하고 있다.
테잘 샤 SEC 뉴욕사무소 부국장은 지난 10월 뉴욕시 변호사협회 행사에서 “AI는 요즘 유행어”라면서 “우리는 상장기업과 투자자문사들이 AI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AI를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사례를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