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오랜 기간 얼어 붙었던 반도체 시장이 점차 깨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반도체 경기회복을 시사하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면서 내년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도 3년 만에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암흑기 탈출’을 시사하는 강력한 지표 중 하나로 메모리 거래가격 상승이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가 고객사에 납품할 때 거래하는 가격이 꾸준히 오르면서 수익성 개선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달 30일 기준 PC용 범용(DDR4 8Gb) D램 고정거래가격은 1.55달러를 기록해 10월 대비 3.33% 상승했다. 앞서 10월에도 전월 대비 15.38% 오른 데 이어 두 달 연속 상승세를 이어간 것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메모리 가격 역시 탄력을 받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 수요가 빠르게 회복세를 보이면서 모바일용 D램 가격 상승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4분기 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 업체에 납품하는 모바일 메모리 가격은 3분기 대비 25~28% 올라 시장 기대치를 훌쩍 뛰어 넘었다.
앞서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 4분기 D램 가격 상승률을 기존 5~8%에서 13~18%로 올려 잡은 바 있다. 향후에도 업황 개선에 따라 시장조사기관들의 상향 조정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쌓여 있던 재고를 줄이기 위해 나섰던 제조사들의 노력이 점차 빛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은 최근 2년간 업황이 크게 위축되면서 재무 상황이 악화된 만큼 판가 인상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공급자가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메모리 거래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과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예상 영업손실은 각각 13조5440억원, 8조3833억원으로 대규모 적자가 확실시된다.
그러나 반도체 업황을 괴롭혀 왔던 과잉재고가 해소되면서 향후 실적 반등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4분기 D램 흑자 전환을 시작으로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D램 부문은 3분기에 흑자를 달성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11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12.9% 증가한 95억달러로 집계됐다. 반도체 수출액이 반등한 것은 작년 8월 이후 16개월 만이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도 내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올해보다 13.1%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부문이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메모리 부문은 내년에 약 1300억달러까지 확대돼 올해보다 약 40%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다.
증권업계는 내년 삼성전자 DS부문의 연간 영업이익을 약 15조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SK하이닉스의 내년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도 약 8조4600억원이다. 유례없는 불황에 적자를 낸 올해와 비교하면 가파른 회복이 예상된다.
다만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내년 하반기로 갈수록 업황의 회복과 함께 공급의 증가가 동반되면서 메모리 가격의 상승 탄력이 점차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