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오랜만에 드라마를 찍고 있는 데 반응이 좋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나이도 들고 쉬었다 하니 눈에 안보였던 것이 보이면서 현장이 더욱더 소중해졌다. 현장에서 연기하고 소통하는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고 재밌게 찍었다. 촬영장에 더 있고 싶은데 끝났다고 집에 가라고 하니 섭섭하더라.”
.JTBC 토일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강남순 엄마 황금주를 연기하는 김정은(49)은 연기하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힘쎈여자 강남순’은 선천적으로 어마무시한 괴력을 타고난 강남순(이유미 분), 황금주(김정은 분), 길중간(김해숙 분) 등 3대 모녀가 강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신종마약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 코믹범죄극이다.
‘K-여성 히어로물’의 새 지평을 연 ‘힘쎈여자 도봉순’ 이후 6년 만에 세계관을 확장해 돌아온 ‘힘쎈’시리즈는 제작 단계부터 큰 화제를 불러모은 기대작이었다. 여성 히어로물을 탄생시킨 백미경 작가와 ‘술꾼도시여자들’의 김정식 감독이 의기투합했다.
김정은은 로맨틱 코미디의 원조격인 ‘파리의 연인’(2004)을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 몇년간 작품 활동이 없었고, 2020년 드라마 '나의 위험한 아내' 이후 3년간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다.
김정은은 “결혼을 하고 외국(홍콩)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연기와 멀어졌는데, 좋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 피가 끓는 느낌은 과거 그대로였다”면서 “이 나이에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힘쎈여자 강남순'은 최고 시청률 9.76%를 기록하며 잘나가고 있다. 황금주는 졸부에 괴력까지 지니고 있는 캐릭터다. 그는 “왕을 많이 연기하면 촬영장에서 왕처럼 행동한다고 하던데, 제가 괴력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니까 촬영장에서 뭔가가 해소되는 느낌이다”면서 “황금주가 어렸을때 구구단을 못외우자 엄마가 대학 가지 말고 종자돈을 주면서 불려보라고 한다. 그게 대박이 났다. 황금주는 머리는 나쁘지만 정의로운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이어 “졸부는 결코 부끄럽지 않다. 황금주는 돈으로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돈으로 플렉스하는 게 모순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난한 정의는 무엇을 위한 정의인가? 이런 정의를 연기했던 배우로서의 답답함과 목마름이 있었다. 황금주처럼 ‘자 여기 돈 2억씩’ 하는 게, 현 시대의 판타지적인 정의가 아닐까”라면서 “이걸 말로 하면 위험한 부분도 있지만, 제가 돈을 대놓고 얘기하면 천박하다고 하는 시대에 광고에 나와 ‘여러분 부자되세요’라고 했더니, 다들 환영하더라. 황금주가 돈을 쓰는 것도 자기 방식 대로 세상에 은혜를 갚는 방법이다. 이게 현 방식의 정의라고 감히 말해도 될 듯하다. ‘그래 돈은 이렇게 써야지’라는 대사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고 자신의 생각을 자세히 밝혔다.
김정은은 황금주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있다고 했다. 남자에게는 군림하지만 자신의 딸 강남순을 찾기 위해 힘쓰고 있고, 엄마(김해숙)에게는 꼼짝도 못한다. 황금주는 몽골에서 새 부모를 만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있던 잃어버린 딸 강남순을 찾기 위해 10억원의 상금을 건다. 이를 도와준 남녀노숙자에게 2억원을 선뜻 주는 멋있는 캐릭터다.
“요즘 지붕 뚫는 여성도 많지만 소외되고 억압받는 약자로서의 여성을 비틀어 권력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만든 설정이 통쾌하다. 황금주가 돈을 많이 버니까 오히려 가모장적이다. 이런 게 백미경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고 본다.”
이 드라마에는 길중간(김해숙)-서준희(정보석) 등 노년기 연애장면이 많이 나온다. 길중간은 “가슴이 쳐지지 심장이 쳐지냐”, “노인은 노래자랑만 보래?”라고 거침없이 대사를 날리는데, 이런 대사도 백미경 작가만이 쓸 수 있다는 것. 김정은은 “내가 아직 그 나이는 아니지만, 끓는 심장의 온도는 다르지 않구나. 사랑도 그렇고. 늙었다고 괄시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느껴진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정은은 쫙 붙는 검은 가죽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멋있게 탄다. 허리를 꺾어 폼이 제대로 나왔다. 김정은은 “그렇게 타면 다친다. 황금주는 섹시하게 보이려고 몸을 S자로 만들어 탄다”면서 “디지털까지 대역하시는 분이 3명인데, 이 분들께도 허리를 조금 꺾어달라고 좀 과한 부탁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힘쎈여자 강남순’은 마약조직을 황금주와 강남순이 추적하고 있다. 물에 흡수되는 등 신종마약 (CTA4885)을 만들고 유통하는 국제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에 본격 돌입했다. 김정은은 “작가가 작두 탄 게 아닐까. 이 드라마는 지난 4월 촬영을 마쳤다. 그 때만 해도 마약 뉴스가 요즘 같지 않았다. 무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며, 걱정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는 시종 코미디 분위기를 유지한다. 김정은은 “코미디가 어렵다. 선을 넘어버리면 이상하고, 도달하지 못하면 재미없다. 김정식 감독님이 수위를 조절해주고 균형을 잡아준다”면서 “의상과 메이크업을 원없이 해보고 있다. 딸인 이유미보다 더 화려하고 젊게 옷을 입는다. 투머치지만 모성애만 믿고 간다”고 말했다.
‘힘쎈여자 강남순’은 넷플릭스에도 공개되면서 전설적인 모델이자 배우인 나오미 캠벨이 재밌게 보고 있다고 SNS에서 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정은은 “마이클 잭슨 뮤비에 나온 배우가 우리 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다고 하니 신기했다. 물론 나오미 씨에게 SNS로 감사인사를 전했다”면서 “요즘 쇼츠 등 숏폼 영상물에도 김정은 짤이 많아 즐겁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주로 맡았던 캔디형 캐릭터가 당시는 사랑스러웠지만 점점 한계가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파리의 연인’도 강태영(김정은)은 한 게 없다. 박신양이 다 해결해주고. 시간이 지나니,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에게 계속 러블리를 요구했다. 그 때부터 과도기였다. 내가 밀려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신나지 않았다. 이제 한 챕터를 넘긴듯 하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이어 “못하는 것에 대한 갈망의 시간을 보냈는데, 이런 걸 만나 행복하다”고 했다.
김정은은 “25년간 연기했지만,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어드바이스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독의 몫이다. 나는 후배들을 편안하게 대한다”면서 “과거 현장에서 무서운 감독이 많았다. 윽박지르는데 어떻게 좋은 연기가 나오나. 연기는 여유로워야 집중할 수 있다. 김정식 감독님은 배우들을 응원하고 배려하는 스타일이다”고 현장을 설명하기도 했다.
“가족들 반응도 좋고 남편 외국인 친구들도 좋아한다. 브래드송 코미디도 좋아하더라. 만들어내는 사람의 의도한 바를 알아주는 것만큼 기쁜 게 있을까. ‘너 보려고 봐’라는 말은 다시 오지 않을 영광이다,”
김정은은 “요즘 ‘무빙’ ‘경이로운 소문’ 등 초능력이 트렌드다. 결핍과 욕구는 서로 비슷한 것 같다. 거기서 승자는 디테일인가”라면서 “‘힘쎈여자 강남순’도 마블처럼 브랜드화하고 스핀오프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백미경 작가의 한국형 히어로, 그안에 B급 코미디가 존재하고. 우리에게는 가족이라는 무기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