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시한폭탄이 사흘을 남기고 멈춰섰다. 미 하원이 정부 셧다운을 막기 위한 임시예산안을 가결하면서다.
뉴욕증시는 미국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다는 뚜렷한 징표가 나오면서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시장에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을 사실상 종결지었다는 인식이 확산, 미 국채금리가 크게 떨어지고 달러화 가치가 하락했다.
자본시장에 드리웠던 불확실성이란 먹구름이 걷힌 미국발(發) 호재에 큰 변동장세를 겪고 있는 국내 증시도 상승 랠리를 펼칠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美 하원, 찬성 336표·반대 95표로 임시예산안 가결 처리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4일(현지시간) 미 하원은 본회의를 열고 지난 9월말에 처리된 임시예산이 종료되는 오는 17일 이후에 적용할 후속 임시 예산안에 대해 표결을 실시해 찬성 336표, 반대 95표로 가결 처리했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주도한 이 예산안은 정부 부처별로 예산이 소진되는 시기를 다르게 정한 것이 특징이다. 보훈, 교통, 농업, 주택, 에너지 등 관련 부처는 내년 1월 19일까지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고, 국방부와 국무부 등은 2월 2일까지의 예산을 담은 '2단계' 예산안이다.
이 안에는 민주당이 결연히 반대하는 대규모 예산 삭감을 포함하지 않았으며 민주당과 공화당간에 이견이 드러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 패키지 지원 예산, 국경 통제 강화 예산 등도 빠졌다.
임시예산안이 하원을 통과함에 따라 상원에서의 심의 및 처리절차를 앞두고 있다. 상원의 양당 지도부는 이미 임시예산안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별다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통과될 것으로 관측된다. 상원에서도 예산안이 통과된 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해 공포하면 예산안은 발효하게 된다.
셧다운 현실화 여부가 증시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 중요했던 이유는 미국 국가신용등급에 직접적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로 유지하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는데, 무디스는 이런 조치의 근거로 “의회 내 정치 양극화”를 거론하며 셧다운 위기를 언급했다. 앞서 피치는 지난 8월 부채한도 공방에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단계 강등한 바 있다.
연방정부 운영 중단에 따른 주요 경제 지표 발표 지연·중단 가능성도 주요 리스크로 꼽혀왔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거듭 강조하고 있는 노동 시장과 인플레이션 관련 경제 지표 발표가 늦어지면서 시장이 기대하고 있는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와 피벗(pivot·금리 인하) 시점이 예상보다 훨씬 더 멀어질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은 지난 50년간 20여 차례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를 겪었다. 가장 최근의 셧다운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인 2018년 12월 시작해 역대 최장인 34일간 지속된 바 있다. 과거 셧다운 기간 미 증시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 때 셧다운 동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5% 넘게 급락한 바 있다. 지난 2013년 10월 16일간 이어진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당시 셧다운 때도 고점 대비 10% 하락했다.
10월 美 CPI 3.2% 컨센서스 하회…하루새 금리 인상 기대감 사라져
이 같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에 앞서 14일(현지시간) 오전 발표된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을 밑도는 3.2%를 기록한 것도 증시엔 호재로 작용했다. 전월 대비로는 보합을 나타내며 역시 시장 기대를 하회했다.
물가상승률 둔화 폭이 시장 예상을 넘어서면서 미 국채 수익률 역시 급락했다. 미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이날 오후 증시 마감 무렵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4.45%로 하루 전 같은 시간 대비 18bp(1bp=0.01%포인트) 하락했다.
시장에선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마무리 지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금리선물 시장은 12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할 확률을 0.2%로 반영했다. 전날 금리인상 확률을 14.5%로 반영했던 점을 고려하면 하루 새 금리 인상 기대감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1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금리를 25bp 인상할 확률도 전날 23.3%에서 0.2%로 하락했다.
미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주요 통화에 견준 달러화 가치도 하락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달러화 인덱스는 이날 뉴욕증시 마감 무렵 104로 지난 8월 말 이후 2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시트 인베스트먼트 어소시에이츠의 브라이스 도티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아직 안 끝났다고 믿어온 투자자들이 결국 (항복하고) 수건을 던진 것 같다”며 “내년 여름 연준의 취할 행동은 금리 인상보다는 금리 인하일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S&P500·나스닥, 6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률
이 같은 흐름 속에 미 증시 주요 지수는 일제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1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489.83포인트(1.43%) 오른 34,827.70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84.15포인트(1.91%) 상승한 4,495.70에 거래를 마쳤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326.64포인트(2.37%) 급등한 14,094.38에 장을 끝냈다.
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지난 4월 27일 이후 6개월여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내 증권가에선 활짝 웃은 미국 증시 덕분에 코스피·코스닥 지수 역시 상승 출발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지수는 1.0~1.5% 상승 출발할 것”이라며 “국내 증시는 위험 자산 선호 현상 속에서 원/달러 환율과 국채수익률 하락, 외국인 수급 유입 등 기대감으로 상승폭을 확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시가총액 비중이 큰 반도체와 2차전지 등을 중심으로 전일에 이어 강한 수급이 유입될 경우 장중 강한 상승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김 연구원은 장중 발표 예정인 중국의 10월 소매판매·산업생산 등 실물경제지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전월 대비 큰 폭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 기대에 부합하거나 상회할 지 여부가 중요 포인트”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