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개인사업자대출, 1년 새 7000억원 감소
불어난 대출에 은행 문턱 못 넘어…대출 증가세에 역행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 자영업자 이모(35) 씨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서울에서 운영 중이던 음식점 3곳 중 2곳을 폐업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가게를 지키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회복되지 않는 매출에 늘 운영 비용이 부족한데 신용능력도 악화돼 돈을 마련할 방법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미 여러 곳에 대출금이 남은 상황에 은행 대출은 감히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업과 가계를 가리지 않고 은행 대출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며 부채 규모가 급증하는 가운데, 전체 기업대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개인사업자대출 규모는 1년새 되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심리 둔화로 자영업자들의 자금 수요는 여전한 상황이지만, 코로나19 기간 확대된 부채에 신용능력이 줄면서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새 기업대출 60조원 늘었지만…개인사업자대출만 감소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747조4893억원으로 지난해 동기(687조4233억원)와 비교해 약 8.7%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 기업대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318조9099억원에서 318조1929억원으로 7000억원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금리인상이 본격화된 이후 가계대출 확대에 어려움을 겪은 은행들이 우량한 기업을 위주로 대출 영업을 강화한 영향이다. 실제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대기업 잔액은 129조4044억원으로 전년 동기(96조7248억원)와 비교해 33.8%가량 급증했다. 개인사업자를 제외한 중소기업대출 잔액 또한 271조7886억원에서 약 299조9000원으로 10.3%가량 늘었다.
통상 개인사업자대출 추이는 가계대출 잔액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 사업장이 많은 개인사업자의 특성상, 개인자금과 사업자금을 구분하지 않고 융통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하지만 최근의 양상은 다르다.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이 줄어든 최근 1년간 가계대출 규모는 되레 급증했다. 실제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은 약 515조원으로 전월(512조9000억원)과 비교해 3조원 이상 늘었다. 이달 들어서는 그간 증가세가 주춤했던 신용대출 잔액도 5대 은행에서만 보름 간 3000억원가량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들의 자금 상황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고물가와 함께 경기둔화에 따른 소비위축이 계속되면서 대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2023년 2분기 대출행태 서베이’에 따르면 3분기 중소기업(개인사업자 포함)의 대출수요지수 전망치는 19로 지난 1분기(6)와 비교해 13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최근 무섭게 증가하고 있는 가계의 주택대출수요(19)와 같은 수준이다.
“언제쯤 사정 나아질까”…고금리·고물가에 자영업자 ‘비명’ 이어진다
이에 개인사업자 차주들의 신용 상황이 악화되며, 수요와 공급의 괴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개인사업자들의 경우 당연히 비교적 금리 수준이 낮은 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자 하지만, 이미 한도에 다다른 대출금을 보유한 경우가 많아 실제 (대출)실행 사례가 여타 대출보다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자영업 대출(개인사업자의 가계대출+기업대출) 잔액은 1033조7000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684조9000억원) 이후 3년 새 50.9%가량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7월 기준 예금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기준 금리는 5.31%로 약 10년 전인 2013년 4월 이후 최고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자 부담이 늘어나며, 연체율 상승세도 지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은행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0.45%로 전월과 비교해 0.04%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2016년 11월(0.46%)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한 지난 5월 연체율과 동일한 수치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3년간 지속된 것을 감안하면, 실제 연체율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애초 올해 하반기 중으로 예측됐던 금리인하 시기도 점차 미뤄지며, 자영업 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자영업자 소득은 대출금리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영향으로 더디게 개선되며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영업자 부문의 누적 잠재부실이 단기간 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증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