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중심 시대…“신제품 위상 달라져”
빨라진 유행·짧아진 수명…‘한정판’은 늘어
제과업계 R&D 1% 미만…“업계 특성도”
[헤럴드경제=김희량·전새날 기자] 1970~1980년대 나왔던 스낵 제품이 여전히 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신제품들이 기존 제품의 변주에 그친다는 비판도 관련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새로운 맛과 형태보다는 소스나 재료를 달리하는 한정판이나 ‘형제 제품’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업계에서도 나름대로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30일 헤럴드경제가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 제과업계에서는 ‘장수 제품’ 자체가 나오기 어려워진 식품시장의 환경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하나의 제품이 꾸준한 마케팅으로 장기적인 수명을 가져가는 것은 드물다. 제품이 하나 나오면 그 전파 속도 만큼이나 휘발 속도도 빨라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여기에 제품군과 제조사가 많아지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리스크가 과거에 비해 더욱 커진 측면도 있다. 신제품은 개별 회사 입장에서는 일종의 투자다. 특정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춘 생산라인 증설이 필요한데 오히려 소비자의 입맛은 대량 생산에는 불리하게 다양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기존 제품을 활용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한 시도가 되는 셈이다. 기존 제품의 팬층이 탄탄하기 때문에 신규 소비자 창출 부담이 적고 관심을 얻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소비의 주도권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넘어간 점을 강조했다. 조미숙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선택권이 없던 상태에서 ‘새우깡’이 나오던 시대와 수입 과자를 포함, 수천 개 과자가 있는 상태에서 신제품이 가졌던 위상 자체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주의 미학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스낵 신제품 공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판매 시작 12주 만에 600만봉이 팔린 농심 ‘먹태깡’도 ‘국민 과자’라는 수식어가 붙은 같은 회사 새우깡의 사실상 ‘형제 제품’이다. 과거 2014년 화제가 됐던 해테제과 ‘허니버터칩’도 감자칩이라는 기본 제품에서 변주를 준 사례에 해당한다.
미디어의 변화도 한몫했다. 식품 시장을 주도하는 일명 헤비 유저(heavy user)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소비자다. TV·신문 광고 등 새 제품에 대한 접근 경로가 한정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들이 맛과 트렌드를 나누는 매체는 주로 소셜미디어(SNS)로 변화했다. SNS의 전파 속도가 빨라져 유행에도 속도가 붙었지만 반대로 유행의 수명 자체도 짧아졌다.
제과업계의 경우 R&D(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1% 내외로 크지 않다. IT업계 등 다른 업계 대비 원재료 비용 규모 자체가 다르다. 제과를 생산하는 식품기업 중 규모가 큰 편인 농심의 R&D 비중은 0.9%로 2021년 대비 소폭 줄어든 상태이다. 많게는 20~25% 비중을 차지하는 IT업계와는 업계 특성상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000대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4.53%였다. 이들 기업의 R&D 투자 비중은 2010년 2.79%에서 2019년 4.29%로 뚜렷한 증가 추세에 있는 것과 대비해 식품업계는 업계 특성 상 다른 양상을 보인다. 식품업계에서 R&D 부문 투자 원톱으로 꼽히는 CJ제일제당의 경우 지난해 R&D 투자 비용이 2191억원으로 매출의 1.17%에 불과했다.
제과업계의 R&D의 경우 신제품 개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R&D의 내용에는 레시피·포장 개선 등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연구도 포함된다. 업계 관계자는 “50년 가까이 넘게 팔리는 제품의 경우 그동안 한국의 기온과 각종 재료 수급 상황, 소비자의 선호가 변했기 때문에 그 변화를 소화할 수 있는 연구개발도 이뤄진다”며 “포장재의 단열성을 높이거나 식감을 다르게 리뉴얼하는 것 등도 R&D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