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국내 증시를 거세게 휘몰아친 2차전지 소재주 투자붐 속에서도 외국인 투자자는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셀 등 한국 경제의 대들보주를 폭풍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미(소액 개인투자자) 투자금이 2차전지 소재주로 향한 사이 외국인 투자자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전통 대형주에 대한 지분율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린 것이다.
증권가를 중심으로는 2차전지 소재주에 대한 개인 투자자 중심의 수급 쏠림 현상이 7월에 정점을 찍고 8월 들어 해소될 가능성이 높단 평가에 힘이 실린다. 개인 수급이 차기 행선지를 찾는 국면에서 안정적인 외국인 수급이 이어졌던 종목들을 확인하는 것은 차기 주도주를 예상해 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SK하이닉스 外人 지분율 8년 1개월 만에 최고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시장 내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 중 눈에 띄게 외국인 지분율이 큰 폭으로 높아진 곳은 반도체·자동차 섹터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달 31일 기준 외국인 지분율이 52.43%로 지난 2015년 6월 26일(52.50%) 이후 8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 50% 내외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외국인 지분율은 에코프로 그룹주의 급등세가 시작한 지난 5월 말 51% 벽을 넘어섰고, 이후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린 끝에 현재 수준에 이르렀다.
이 기간 외국인 투자자는 SK하이닉스 주식 2조131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주가가 급등한 2차전지주 등을 향해 빠져나갔을 것으로 보이는 개인 순매도액(2조8091억원)을 기관(7989억원)과 함께 받은 것이다.
국내 시총 1위 삼성전자 역시 외국인 지분율의 뚜렷한 상승세가 나타났다. 전날 기록한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 53.03%는 지난 2021년 8월 11일(53.25%) 이후 2년 만에 쓴 최고 수치다.
외국인 투자자는 올 한 해 삼성전자에 대해 초강력 순매수세를 보였다. 외국인이 기록한 삼성전자 순매수액 13조149억원은 코스피 전체 순매수액(13조1645억원)의 98.9%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형주 위주의 장투 성향을 보이는 외국인 투자자는 2차전지 쏠림에 따른 급등세 등 단기적 현상에 집중하지 않았다”며 “대신 ▷글로벌 반도체 업황 반등 ▷‘바닥’을 찍은 뒤 하반기 상승이 예상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확대에 따른 수혜 등 중장기적 호재에 무게를 뒀다”고 평가했다.
자동차주 중 현대차(32.87%·8월 2일), 기아(38.27%·7월 26일)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도 각각 2년 11개월 만(32.99%·2020년 8월 13일), 2년 8개월 만(38.25%·2020년 11월 17일)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 두 종목에 대한 외국인 순매수액은 각각 1조6185억원, 6647억원에 달했다.
해당 증권업계 관계자는 “1·2분기 연속 ‘어닝 서프라이즈’로 테슬라를 뛰어넘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보여 준 결과”라며 “실적 모멘텀이 내년까지도 꺾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 기인한 투자”라고 분석했다.
外人, 2차전지 ‘배터리셀’ 강력 매수 vs ‘소재’ 강력 매도
외국인 투자자는 2차전지 섹터에 대해서 만큼은 ‘배터리셀’과 ‘소재’를 확연히 구별해 투자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이 선택한 부문은 ‘배터리셀’이었다.
삼성SDI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 6월 20일 기준 49.67%를 기록하며 상장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날 기준 삼성SDI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49.11%까지 내려섰지만 여전히 49%대는 깨지지 않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도 지난 6월 15일 기준 5.60%로 작년 상장 당일(1월 27일· 5.49%)을 제외하고는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가가 급등세를 보였던 2차전지 소재주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같은 2차전지 섹터지만 배터리셀과 뚜렷하게 대비됐다.
포스코홀딩스에 대한 지분율은 집계 이후 최초로 30% 벽까지 무너지며 전날 29.43%까지 떨어졌다. 역대 최저치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 역시 전날 4.66%까지 내려앉으며 지난 2012년 1월 3일(4.09%) 이후 1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개인 수급의 쏠림 현상으로 주가가 급등 현상을 보이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차익 실현에 나섰다”며 “주가 급등락 등 ‘과열’ 현상에 변동성이 커지면서 조정장세가 올 것을 대비한 외국인 투자자가 지분율을 빠른 속도로 낮춘 결과”라고 설명했다.
2차전지 붐의 발원지로 꼽히는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의 경우에도 각각 외국인 지분율이 8.09%(7월 18일), 3,97%(5월 22일)로 2년 1개월, 4년 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엔 두 종목 모두 ‘숏 스퀴즈’로 인해 외국인 지분율이 단 시간에 급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급등락세로부터 한 걸음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LG화학조차도 외국인 지분율은 전날 기준 45.97%로 2년 2개월 만(2021년 6월 16일, 8.02%)에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2차전지 소재주로 묶인 탓이다.
증권가 “外人 순매수株, 차기 주도주 찾기 힌트”
외인 지분율 상승주에 시장이 주목하는 이유는 특정 업종에 대한 쏠림 현상이 완화됐을 때 외국인 순매수 업종을 통해 차기 주도주가 무엇일지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증권가의 분석 때문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2차전지 쏠림 현상 완화에 따른 (증시 수급) 정상화 국면에서 기존 주도주인 반도체, 자동차 중심의 코스피 지수 상승세를 전망하고 있다”며 “두 섹터 외에 외국인의 차별적 순매수 유입됐던 조선, 인터넷, 운송 업종 등의 주도로 등락 결정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2차전지 중심으로 쏠렸던 개인 수급이 빠져나오면서 증시 전반의 추가 상승으로 이어졌던 과거 경험에 비춰 현재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증시 측면에서 특정 종목에 편중됐던 열기가 식는 것이 주식 시장의 끝을 의미한다기보단 새로운 상승 국면을 알리는 신호탄인 경우가 많았다”며 “쏠렸던 수급을 다시 받아주는 업종은 결국 반도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