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2차전지주(株)가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투자자들에게 ‘천스닥(코스닥 지수 1000포인트)’ 달성 가능성이란 ‘천당’과 70포인트(P) 급락이란 ‘지옥’을 맛보게 했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선 최근 들어 심화된 2차전지에 대한 과도한 쏠림 현상이 현기증 나는 롤러코스터장세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변동장세가 이번이 끝이 아닌 시작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쏠림이 과도한 상황 속에 시장이 자칫 약세로 전환할 경우 과열 국면에서 투자자들이 달려든 종목의 주가가 버텨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코스닥 거래대금 상위 10개 2차전지株, 전체 거래대금 절반 이상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닥 지수는 전장 대비 4.18% 하락한 900.63에 장을 마감했다. 최종 지수에 도달하는 과정은 다이내믹 그 자체였다. 전날 오후 1시 3분까지만 해도 장중 최고가 956.4를 찍으며 ‘천스닥’의 꿈을 키워나갔지만, 불과 54분 뒤인 오후 1시 57분에는 886.14까지 추락하며 장중 최저가를 찍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 코스닥의 낙폭은 70.26포인트에 이르렀다.
코스닥 지수를 롤러코스터 위에 탑승시킨 것은 최근 코스닥 지수 강세의 주인공이었던 2차전지주였다.
이날 투매에 나선 개인과 ‘포모(FOMO·나만 제외될 수 있다는 공포) 심리’에 뒤늦게 2차전지주 매수에 나선 투자자들이 뒤엉키며 이날 코스닥 거래대금은 26조2003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에코프로비엠(종목별 거래대금 1위), 에코프로(2위), 엘앤에프(3위), 나노신소재(6위), 성일하이텍(8위), 미래나노텍(10위), 원준(11위), 피엔티(16위), 대주전자재료(17위) 등 거래대금 상위 10개 2차전지주가 코스닥 전체 거래대금에서 차지한 비율은 51.98%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들 종목의 코스닥 전체 시총 중 비율은 5분의 1(22.05%) 수준에 불과하다.
이날만큼은 2차전지주가 코스닥 하락의 주범이었다. 원준(+1.57%)을 제외하고 에코프로비엠(-1.52%), 에코프로(-5.03%), 엘앤에프(-5.40%), 나노신소재(-7.13%), 성일하이텍(-1.63%), 미래나노텍(-11.19%), 피엔티(-7.05%), 대주전자재료(-6.69%), 엔켐(-5.92%) 등 9개 종목에 일제히 파란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지수를 주도하는 2차전지주의 약세는 코스닥 전체에 대한 투심 약화로 이어졌다. 26일 하루에만 전체 종목의 89.9%인 1480개 종목이 하락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면서다.
코스닥보다 낙폭(최고 대비 최저 58.23포인트)과 기울기(최고가 오전 9시 1분, 최저가 오후 1시 58분)는 작았지만 코스피에서도 비슷한 롤러코스터 장세가 펼쳐졌다. 포스코홀딩스(-4.26%), 포스코퓨처엠(-6.35%), LG에너지솔루션(-2.36%), LS(-5.91%), SK이노베이션(-0.49%), 코스모신소재(-8.90%) 등 주요 2차전지주의 약세 속에 최종 지수는 전일 대비 1.67% 빠진 2592.36에 장을 마쳤다.
과도한 쏠림·PER 수백 배·빚투 급증…증권가, ‘멀미 장세’ 재발 우려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잇따라 전날의 상황이 끝이 아닌 시작일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리는 상황이다. 최근 2차전지주에 수급이 과도하게 쏠린 탓에 증시 불확실성이 커졌고, 이로 인해 폭등과 폭락이 거듭되는 ‘멀미 장세’가 수차례 더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2차전지 관련주가 주가수익비율(PER)이 수백 배까지 치솟는 등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이 이미 이상 징후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2차전지 대장주로 꼽히는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의 PER은 각각 157.93배, 858.14배, 366.73배에 이른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등의 내용이 큰 변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며, 2차전지 업종에 대한 쏠림 현상 완화 여부에 따라 상승·하락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동안 수면 아래로 내려간 듯 보였던 ‘빚투(빚내서 투자)’가 증가 추세를 보인 점도 리스크다. 코스닥 시장의 신용잔액은 지난 4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주가 급락 사태(일명 라덕연 사태)’ 이후 9조원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24일 다시 10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주가가 급락 시 반대매매로 인한 연쇄 폭락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졌다는 것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수일간의 수급을 모조리 흡수했던 2차전지 관련 종목의 주가와 수급이 시장 전체를 흔들어놓고 있다”면서 “펀더멘털(기초여건)이나 업황 트리거(변수)가 발생하지도 않았음에도 이런 변동성이 나타나는 것은 수급과 심리적 요인이 반대급부 현상을 겪고 있음이 유력해보인다”고 풀이했다. 이어 한 연구원은 “오전만 하더라도 코스닥 종목 중 1400개가 하락하고 있는데도 1%대의 상승세를 보였었다. 이는 분명히 ‘정상’이 아닌 상황”이라면서 “시장도 이런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듯 하다”고 짚었다.
일각에선 에코프로 그룹주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외국인 투자자의 ‘숏 스퀴즈’가 주가 고점을 의미하는 신호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공매도 세력의 숏 스퀴즈가 나온 시점이 이미 ‘차익실현’ 매물이 크게 늘었다는 방증이며, 미국에서 공매도와 전쟁에서 개미(소액 개인 투자자)가 승리한 것으로 알려진 ‘게임스톱’ 역시 숏 스퀴즈 후 주가가 급락했다는 이유에서다. ‘숏 스퀴즈’란 주가 하락을 기대했던 공매도 투자자가 주가 상승 압박을 못 이겨내고 발 빠르게 주식을 다시 매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경우 주가는 급등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2차전지주 열풍에 따른 쏠림 현상은 과거 국내외 어느 증시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일 만큼 예측불허라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라며 “지금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단어가 바로 ‘신중함’”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