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되면 알아서 자동으로 굴려줘”…오늘부터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본격시행 [투자360]
[연합]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12일 본격 시행된다. 이에 따라 3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을 두고 금융회사들의 점유율 경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증권가의 경우 디폴트옵션 상품을 통해 유입된 퇴직연금 금액이 올해 2분기 말 기준 900억원을 돌파해 직전 분기 대비 가파른 증가세를 나타냈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해 7월 도입됐으나 상품 승인과 규약 변경, 전산망 구축 등에 필요한 기간을 고려해 1년간 유예기간을 둔 뒤 이날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날 자본총계 기준 상위 6대 대형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삼성·하나·KB증권)에 따르면 2분기 각 사의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유입된 퇴직연금 금액은 약 922억5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분기(501억5000만원) 대비 약 84% 증가한 수준이다.

현재 대형사들은 각종 예·적금 및 펀드 상품을 다양하게 조합해 만든 포트폴리오 개념의 디폴트옵션 상품을 각사별로 7∼10개씩 판매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예·적금 위주의 초저위험 상품군에 유입된 자금이 상당 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분기 말 기준으로 약 25만명이 총 135개의 디폴트옵션 상품에 가입해 이를 통해 3000억원의 퇴직연금이 적립됐는데, 이중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이 포함된 저위험∼고위험으로 유입된 자금은 500억원에 그쳤다. 금액 대부분인 나머지 2500억원은 초저위험 상품군으로 흘러들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디폴트옵션 상품 중 가장 많은 자금이 들어오는 상품은 여전히 초저위험∼중위험 상품 쪽"이라며 "아직은 원리금 보장 상품을 원하는 고객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증권가에서 투자자 유치에 열을 올리는 건 중장기적 목적이 크다. 보통 증권사가 예·적금 상품 중심으로 구성된 초저위험 포트폴리오 상품을 판매할 경우 취할 수 있는 보수는 펀드 등이 포함된 저위험∼고위험 포트폴리오 상품에 비해 미미하다.

하지만 일단 장기투자 성향의 충성고객을 한 번 확보해 놓으면 향후라도 다른 투자 상품을 판매할 기회가 생기고 자사 투자 플랫폼을 활용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에 대형 증권사들은 디폴트옵션 상품 고객들을 대상으로 일찌감치 각종 상품 증정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고객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특히 자산운용사의 경우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되며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했던 와중에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이 열리면서 다양한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이 제대로 정착한다면 국내 증시로의 자금 추가 유입도 기대된다. 신한투자증권은 퇴직연금 시장 성장세와 확정기여형(DC형)·개인형(IRP) 퇴직연금의 주식 비중 증가세 등을 고려하면 내년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TDF나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통해 최대 25조원 가량의 신규 자금이 국내 증시로 들어올 수 있다고 추정한다.

다만 디폴트옵션 도입 초기에 금리 인상기 및 증시 부진과 맞물린 점은 금융투자업계로서는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디폴트옵션을 선택하는 투자자는 애초 투자성향이 적극적인 사람들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마침 작년 도입 초기 은행 예·적금 금리도 4%대로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보니 초저위험 상품 가입 수요가 더 많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며 직접 투자를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쌓여 퇴직연금 자금에 대해서도 보다 수익률이 높은 투자상품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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