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정치권까지 발칵 뒤집은 ‘테라·루나’ 사태 권도형…그의 비위는 어디까지? [투자360]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게티이미지뱅크·블룸버그 자료]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이번에는 몬테네그로 정치권을 발칵 뒤집었다. 권 대표가 몬테네그로의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오는 11일 총선 직전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8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최대 일간지 '비예스티' 등 현지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드리탄 아바조비치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권 대표에게 편지를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아바조비치 총리는 권 대표가 자필로 쓴 편지에 '지금 유럽'(Europe Now Movement)의 밀로코 스파이치 대표와 2018년부터 인연을 맺었으며, 그에게 정치 자금을 후원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주장했다.

권 대표는 아바조비치 총리를 비롯해 마르코 코바치 법무부장관, 특별검사실에도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아바조비치 총리는 권 대표와 스파이치 대표의 연관성에 대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며 특별검사실에 조사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이 권도형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는 상황에서 스파이치 대표가 권도형과 접촉한 것이 사실이라면 몬테네그로에도 좋지 않다"며 "우리가 글로벌 사기꾼의 온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스파이치 대표가 권 대표와 특별한 관계였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 스캔들이 몬테네그로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권 대표에 대한 다음 재판은 오는 16일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이 재판에서는 권 대표의 보석을 둘러싼 공방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정치자금 후원 의혹이 현지 정가의 큰 쟁점으로 부각된 만큼 법정 안팎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남의 나라 정치권까지 발칵 뒤집은 ‘테라·루나’ 사태 권도형…그의 비위는 어디까지? [투자360]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지난 8일 서울남부지검은 권 대표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상태에서 거액을 빼돌린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테라·루나 사태 수사를 이끄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장 이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권 대표가 지난 3월 붙잡힌 이후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 소유 가상화폐 지갑에서 2900만달러(약 378억3000만원) 상당을 인출한 것을 파악,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LFG는 테라USD(UST) 코인의 가치를 달러화에 고정하는 '페그'를 유지하기 위해 권 대표가 설립한 조직이다. UST를 떠받치는 안전장치로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화폐를 계속 사들이는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단 부장은 LFG에서 사라진 가상화폐와 관련해 "권도형이나 그의 지시를 받은 누군가가 이를 꺼내 시그넘(Sygnum) 은행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 현금화한 것으로 추정한다"며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2월 권 대표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면서 그가 비트코인 1만개(시세 약 3497억원)를 빼돌려 현금화한 뒤 이를 스위스 은행에 예치했다고 적시한 바 있다. 해당 은행이 바로 시그넘 은행이다. 이 시그넘 은행의 권 대표 자금 중 1억달러(약 1300억원) 이상이 도피 기간인 2022년 6월∼올 2월 인출됐는데, 이 돈의 대부분은 로펌 계좌로 송금되거나 테라폼랩스 임금·청구서 지급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단 부장은 현재 시그넘 은행에 남아있는 약 1300만달러(약 169억원) 역시 LFG의 지갑에서부터 옮겨진 것으로 파악됐다며, 해당 자금의 동결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 검찰이 이미 시그넘 은행에 접촉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한편 한국과 미국의 권 대표 신병 확보전과 관련해 단 부장은 "한국에서 형이 집행된 뒤 미국에서 수형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금융 사기로 징역 40년 이상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언급, 권 대표에게 한국 금융범죄 역사상 최장기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단 부장의 언급은 타국의 형사절차 진행을 위해 한국에서의 형집행 절차를 중단하고 범죄인의 신병을 잠시 넘겨주는 '임시인도' 제도에 근거한 것이다. 한국이 먼저 몬테네그로에서 권 대표를 인도받아 재판과 유죄 확정까지 마무리 지으면, 형 집행 전에 권 대표를 미국으로 임시 인도해 한국에서 처벌받지 않은 내용으로 수사와 재판을 마치게 한 뒤 다시 한국과 미국에서 차례로 복역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블룸버그는 "권도형이 먼저 모국인 한국에서, 그리고 난 뒤 미국에서 여생의 대부분을 감옥생활로 보내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라고 부연했다. 각각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 양쪽 관할권에서 재판과 복역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테라·루나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인 작년 4월 한국을 떠난 권 대표는 도피행각 11개월째인 올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출국하려다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체포돼 현지에 구금 중이다. 현지 법원이 그의 보석을 허가했다가 검찰이 불복하는 일이 반복되며 아직 석방은 이뤄지지 않았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테라·루나 사태 관계자들을 수사해온 남부지검은 당시 법무부를 통해 몬테네그로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지만, 미국도 동시에 신병 인계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권 대표의 신병 확보를 놓고 양국 당국이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2월 미국 뉴욕 검찰은 한발 앞서 권 대표를 증권 사기 등 8개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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