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15개월 아이인데 병원을 가면 항생제, 때로는 스테로이드까지 처방해줘요. 이게 맞나요?”
A씨는 아이에게 처방되는 항생제 때문에 고민이 많다. 항생제 내성에 대한 이야기를 적잖게 들어서다. 어느 의료기관을 찾아도 항생제는 대부분 처방한다. 의사에게 처방 이유를 묻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이런 A씨의 고민은 일정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의사 10명 중 4명은 항생제가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처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의사들이 고백한 내용이다. 전체 항생제 처방의 ‘4분의 1’ 이상이 부적절하다는 통계도 나왔다.
의료계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이 작년 의사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항생제 인식도 조사 결과(감염내과 제외)’에서 의사의 40% 이상이 “항생제가 불필요한 상황임에도 처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해당 설문조사는 작년 11월 의사 1046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의사 스스로 항생제를 불필요하게 처방했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내 항생제 적정 관리를 위해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등을 대상으로 배포되는 ‘항생제 사용관리 프로그램(ASP)’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60%에 미치지 못했다.
ASP란 국내 항생제 적정 사용관리를 위해 질병관리청이 병원 등에 배포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또 지난 2019년 전국 의료기관 대상 ‘항생제 처방 질적 평가’ 결과, 전체 항생제 처방 중 26.1%가 부적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항생제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항생제 처방이 남용되면 여러 항생제 내성이 생길 수 있다. 항생제 내성이란 세균이 항생제의 효과에 저항해 생존 혹은 증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 균주가 출현하면서 감염질환 치료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다제내성균은 여러 종류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어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가 몇 안 된다. 쉽게 말해 항생제 내성이 생길 경우 항생제를 처방해도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영국에서 발표된 항생제 내성 보고서는 “2050년까지 항생제 내성 문제 지속 시 전 세계적으로 1000만명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A씨의 고민이 괜한 우려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항생제를 적절히 처방하는 ‘양심적인’ 의료기관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원급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나 환자 가족이라면 ‘그린처방의원’ 인증을 받은 곳을 찾으면 된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이 인증하는 그린처방의원은 ▷약품비 발생 수준 ▷감기 항생제 처방률 22.1% 미만 ▷전년도 전체 의원급 의료기관 평균 미만의 주사제 처방률 등 평가를 거쳐 지정된다.
최근 5년 간 인증 기관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8년 2만5396개소, 2019년 2만6520개소, 2020년 2만7422개소, 2021년 2만8127개소, 지난해 2만8568개소다. 우리집 근처에 있는 그린처방의원은 심평원 홈페이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방문한 의원급 의료기관 내부에 게시된 ‘그린처방의원 지정서’을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항생제를 쓰지 않거나 적당히 써서 환자가 낫지 않으면 ‘돌팔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며 “항생제 처방은 증상 개선 또는 악화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면서 처방을 결정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