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샤넬 오픈런이 이렇게 쉬웠나.’
11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 앞. 불과 몇 개월 전 평일에도 매장을 빙 둘러쌀 정도로 300m가량 늘어서 있던 ‘오픈런 줄’이 실종됐다. 이날 대기인원은 단 6명. 오픈런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평일에는 연차를 내면서까지 줄을 서야 했지만 최근에는 “지나가다 명품 매장에 들러도 될 정도”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날 오전 9시 10분께 여섯 번째로 줄을 선 직장인 A씨는 “샤넬 카드지갑을 사러 왔다”며 “오늘 다른 일정 때문에 연차를 냈는데 일정이 취소돼서 한 번 와봤다”고 말했다. ‘오픈런 팁’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던 1년 전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오픈런 경쟁이 한창 치열했을 때, 샤넬 대기줄은 백화점 건물을 한 바퀴 둘러쌀 정도였다. 2년 전 같은 달 평일에는 매장 오픈 시간 2시간 전인 오전 8시부터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는 약 100여명이 줄을 섰다.
줄을 대신 서 주는 ‘오픈런 알바’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날 매장 앞에 있는 고객들 대부분이 물건을 직접 사러 온 사람들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픈런 대행 알바 시급도 꺾였다. 2022년 초 1만 5000원까지 치솟던 알바 시급 시세는 지난해 말 1만2000원에서 최근 1만원까지 떨어졌다. 9일 중고나라에 개제된 ‘샤넬 오픈런 대행’ 게시글에 따르면 시급은 1만원이었다.
뚝 떨어진 명품 리셀가…200만원 이상 급락
물론 오픈런이 반짝 치열해질 때도 있다. 명품 브랜드가 가격 인상을 예고한 시점이다. 샤넬은 지난해 네 차례에 이어 지난달 초 3∼6%가량 가격을 인상했다. 하나라도 더 쌀 때 사려는 고객들로 지난 2월 말 오픈런 줄은 반짝 길어졌지만 가격 인상되면서 이마저도 시들해졌다. 고물가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결과다.
웃돈을 붙여도 팔리는 명품 리셀도 이젠 정가보다 못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예물 가방으로 인기인 ‘샤넬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 사이즈’는 리셀 플랫폼 크림에서 이달 1195만원가량에 팔리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1400만원대에 팔렸지만 리셀가가 200만원 이상 떨어진 셈이다. 정가 1480만원보다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해 ‘역대 최대’ 기록한 백화점, 올해는 주가 하향
명품 거품이 빠진 모습은 백화점 3사의 명품 매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 1분기(1~3월) 명품 매출 신장률은 전년 동기간 대비 7%에 그쳤다. 신세계백화점은 7.8%, 현대백화점 역시 9.1% 수준이다. 지난해 3월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의 명품 매출 신장률이 각각 18.7%, 30%, 32.8%까지 치솟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성장세가 크게 꺾였다.
명품 매출 의존도가 높은 백화점들은 실적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증권가는 이날 소비 경기 둔화를 반영해 신세계의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한국투자증권과 흥국증권은 신세계의 목표주가를 기존 33만원에서 각각 30만원, 28만원으로 내렸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팬데믹 기간 호조를 보였던 고급품 시장도 성장률이 다소 둔화하고 있다”며 “지난해 성장률이 높았던 기저효과가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전반적인 실적 흐름은 ‘상저하고’의 패턴을 보일 것”이라고 봤다. 지난해 신세계는 연결 기준 매출 7조8128억원, 영업이익은 6454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23.7%, 24.7% 늘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