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2차전지주(株)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지대하지만, 관련 종목에 대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 수는 부쩍줄었죠? 분석이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버렸기 때문입니다.” (A 증권사 애널리스트)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심리가 지배하면서 실제 경영 성과 등에 비해 2차전지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기차(EV)·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의 구체적인 해외 진출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투자자들이 전혀 근거 없는 기대감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라 볼 수 있습니다.” (B 증권사 애널리스트)
연초 주가 급등세로 국내 증시를 이끌고 있는 2차전지주의 ‘쾌속 질주’를 두고 증권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단기 급등세를 명쾌하게 설명하기엔 실적 등 구체적인 근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측과 관련 시장 성장세,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관련 정책 수혜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현실 가능한 수준이란 주장이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2차전지 시총 상위 30개 종목 평균 PER, 반도체의 3.9배
27일 헤럴드경제가 국내 증시 상장된 반도체 관련주 154개 종목과 2차전지 관련주 133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 지난 24일 기준 2차전지주 시가 총액(시총)은 423조2613억원으로 반도체주 시총(499조8430억원)의 84.7%에 이르렀다.
국내 전체 산업에서 반도체와 2차전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해보면 국내 증시 내 2차전지 종목들의 영향력이 실제 산업 구조에 미치는 영향보다 더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KIET)이 발간한 ‘2023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2차전지 섹터의 총 생산액은 11조7560억원으로 반도체 섹터의 총 생산액(146조6890억원)의 8%에 불과했다. 올해 2차전지 섹터 총 생산액은 12조3850억원으로 생산액이 다소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 반도체 섹터(139조4970억원)의 8.9%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주가엔 현재 기업가치와 산업 구조에 대한 평가 이외에도 ‘미래 가치’가 담겨 있다”면서도 “증시 내에서 2차전지 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빨라 분석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시총 상위 30개 종목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18.58배인데 비해, 2차전지 시총 상위 30개 종목의 평균 PER은 무려 73.26배에 이른다. 무려 3.9배나 높은 셈이다.
이용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차전지 ‘대장주’ 에코프로비엠과 올해만 주가가 342.72% 오른 에코프로를 예로 들며 “2차전지 양극재 시장에선 현재까지 계약이 진행된 44조원 규모의 2배가 넘는 총 100조원 규모의 추가 수주 관련 계약이 상반기 중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1분기에 비해 2분기 실적이 다소 저조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해당 물량에 대한 대규모 수주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주가 조정 국면이 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中 배제’ 美 IRA, 韓 2차전지株 고속 성장 결정적 계기”
2차전지 관련주의 주가 상승세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증시에서 과거에도 실제 산업 내 비중이 크지 않은 섹터에서도 미래 성장성에 대한 기대만으로 시총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졌던 경우는 꽤 있었다”며 “다만, 변동 가능성이 큰 중소형 섹터가 아니라 2차전지라고 하는 대형 섹터에서 이런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이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예를 들어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현재 시총(22조8000억원) 규모가 1년전 산출한 적정 시총(21조9000억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설명 가능한 수준”이라며 “다른 주도주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이들 주가가 크게 무너져 내릴 가능성으 낮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작년 말부터 시작해 올해 초까지 이어지고 있는 2차전지주의 상승세가 있기까지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글로벌 2차전지 시장에서 최상위권을 형성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배터리 제조사, 전극활물질업체들이 한국이나 중국 국적인 경우가 많은 상황인데, 미국이 IRA를 통해 중국의 북미 시장 진출을 막아서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업체들에 수혜가 집중된 점이 주가에 강하게 반영됐다는 것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특정국가에 대한 배제가 아닌 ‘공급처 다양화’에 방점이 찍혀있는 유럽 핵심원자재법(CRMA)과 달리 미 IRA는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며 “수혜를 받을 것이란 점이 분명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국내 배터리 제조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모회사 SK이노베이션) 뿐만 아니라 주요 2차전지 소재주에 대한 기업 가치 평가(밸류에이션) 상향 조치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가 조정 대비해야” vs “더 오를 가능성 대비해야”
2차전지주 투자자에 대해 증권업계에선 단기적으로는 가파른 상승장 끝에 반드시 찾아오는 차익 실현 물량 등으로 인한 ‘주가 조정’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강세를 이어온 2차전지에 차익실현 압력이 높아졌다”면서 “상승 피로도를 고려하면 물량 소화 구간을 거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2차전지가 주춤해진다면 차기 순환매 후보가 부상할 것”이라고도 했다.
외국인·기관을 중심으로 한 ‘공매도’ 공세를 개인투자자들의 공격적인 매수세가 막아내며 주가를 끌어올리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주가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이라 증권 전문가들은 꼽는다.
다만, 2차전지주가 중장기적으로 다른 어떤 섹터보다도 빠른 속도로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란데 대부분의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일부에선 이번주 중 발표하는 미 IRA 세부 지침 중 현지생산세액공제(AMPC) 혜택 관련 세부 사항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AMPC 상한선 유무에 따라 ‘추가 상향(업사이드)’ 리스크에 대한 대비까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공장 대부분이 완성차 업체들과 합작사라는 점을 고려해도 2025년 기준 지배주주순이익에 반영될 수 있는 AMPC는 약 1조6000억원”이라며 “AMPC 혜택을 완전 배제한 지배주주순이익이 약 3조10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52%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강조했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기업 가치를 곧장 20~30% 높여 평가해도 무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