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인구 대국, 최악 경제위기에 현지 기업 직격탄

롯데케미칼 측 “현지 법인 매각 작업에 차질 없을 것”

파키스탄, 중국과 상환 연장 합의…“근본적 해결 요원” 지적도

“롯데 현지 공장도 멈췄다” 파키스탄 ‘경제 파탄’ 이 정도였나 [비즈360]
임란 칸 전 파키스탄 총리의 지지자들이 14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파키스탄 경제는 중국 일대일로 등 대규모로 인프라 투자를 받은 이후 만성적인 대외 부채에 시달리다가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정치 불안 지속, 대홍수 등 악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EPA=연합]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인구수 2억3000만명으로 세계 5위의 인구 대국인 파키스탄 경제가 국가 부도 위기 직전까지 내몰리면서 현지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의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 파키스탄 공장은 원료 수입 조달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이날부터 공장 가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파키스탄 증권거래소(PSX)에 고시했다. 가동 재개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24시간 동안 공장이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 화학업계 특성상 가동이 일단 중단되면 막대한 손해가 불가피하다. 현재 고순도테레프탈산(PTA)을 생산하고 있는 롯데케미칼 파키스탄 공장 측은 “현지의 외환보유액 부족 사태로 은행의 원자재 수입 신용장(LC) 개설이 불가해 원료 조달이 힘들어졌고 부득이 생산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LC 결제방식은 조건부 지급확약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LC 개설을 위한 담보를 제공해야 하고 거래 절차가 복잡해 무역 현장에서는 선호되지 않는 대금결제 조건으로 꼽힌다. 그러나 파키스탄 바이어 입장에서는 자국 신용도가 낮다는 것을 인식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LC로 대금결제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자국내 경제 위기가 가속화하면서 그마저도 발급이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현지 매체는 “파키스탄의 산업 부문은 최근 몇 달간 다수의 기업들이 시장 수요 감소와 LC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산 활동을 부분 또는 완전 중단하는 등 여러가지 위기에 봉착해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주에는 자동차업체인 혼다-아틀라스 자동차가 공급망 장애를 이유로 오는 31일까지 공장을 일시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편 롯데케미칼은 지난 1월 파키스탄 법인의 지분 75.01%를 현지 화학회사인 럭키코어인더스트리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처분 금액은 약 1924억원으로, 인수 당시 지불 금액과 비교하면 13배에 달한다. 연말까지 파키스탄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등 매각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번 공장 중단 사태와 관련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예정돼 있는 매각 작업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 경영 부담을 키우는 파키스탄의 경제 상황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중국 일대일로 등 대규모로 인프라 투자를 받은 이후 만성적인 대외 부채에 시달리다가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정치 불안, 대홍수 등 악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붕괴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파키스탄이 2025년까지 해외에 상환해야 하는 액수는 730억 달러(약 92조원)로 추정된다. 전체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9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공영라디오 NPR 역시 “달러 위기가 공급망 위기로 전환된 것”이라면서 “현재 파키스탄은 원자재 수입이 막혀 공장이 멈추고 수출품을 못 만들어 달러를 벌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치솟는 물가에 화폐 가치 하락, 수입품 품귀 현상으로 국민 생활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 현지 매체는 “사람들은 보조금이 지원되는 싼 밀가루를 사러 2~3시간 이상씩 줄을 서고, 우유, 설탕, 콩 등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빚을 내는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최근 파키스탄 측이 중국공상은행(ICBC)과 부채 13억 달러(약 1조7000억원)에 대한 상환 연장에 합의하는 등 벼랑 끝에서 가까스로 회생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파키스탄은 동시에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 재개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파키스탄은 2019년 IMF와 구제금융 지원에 합의했지만, 구조조정 등 정책적인 이견으로 인해 전체 지원금 약 65억 달러(약 8조5000억원) 가운데 절반 가량만 받은 상태다.

하지만 카트리나 엘 무디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지속적인 거시 경제 관리가 없이 IMF 구제금융만으로는 파키스탄 경제를 정상궤도로 되돌리기 충분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롯데 현지 공장도 멈췄다” 파키스탄 ‘경제 파탄’ 이 정도였나 [비즈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