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제인 기자] 유럽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공급 의존도를 줄이면서 에너지 조달 비용이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유럽 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아시아 화학업체들은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3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기존 주력 시장을 서로 맞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는 인도를, OPEC은 유럽 진출을 노릴 것이란 예측이다.
그는 “서방의 여러 제재 속에서 진퇴양난에 처한 러시아가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곳은 인도 정도에 불과하다”며 “인도 역시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러시아 편에 설 이유가 충분히 넘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도를 잃게 된 OPEC은 대체 시장으로 유럽 진출을 노릴 것”이라며 “지난 20년 동안 유럽에 적용해 온 원유공식판매가격(OSP) 할인 폭을 줄이고 있는 최근 추세에서 유럽 시장 확대에 대한 OPEC의 자신감이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에너지 산업의 판도 변화에서 선택권이 없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의존도가 압도적이었던 만큼 OPEC, 미국, 아프리카 등 수입처를 가리지 않고 물량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에너지 비용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까지 러시아산 에너지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받아 왔으나 지금은 대륙을 건너 유조선으로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천연가스는 배관천연가스(PNG)가 아닌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구매해야 해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 연구원은 “에너지 판도 변화에서 유럽의 선택권이 없다면 유럽 내 전통적인 고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며 “석유화학 산업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판단했다.
그는 글로벌 화학업체들의 탈유럽 움직임이 필연적인 추세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 내 에너지 시장이 구조적 불확실성에 갇혀 있고, 비용 부담으로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며, 올해부터 아시아 증설 물량이 저가로 대거 유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아시아 화학업체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전 연구원은 “아시아는 유럽과 동일하게 석유화학 설비의 70% 이상이 NCC(나프타 분해시설) 기반인 만큼 유럽 구조조정의 상대적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며 “이번 하강 국면은 하반기를 기점으로 끝에 다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