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모티콘 무슨 뜻이야?” 그림 읽는 점자로 300억 벌었다
소셜벤처 닷의 고미숙 커뮤니티 매니저가 촉각 출력장치 '닷패드'에 이탈리아 성악가 보첼리의 딸이 그린 그림을 띄웠다. 버튼 아래 공간에는 그림에 대한 대체텍스트가 나온다. 주소현 기자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OOO님이 보낸 이모티콘 메세지입니다”

여러 마디 말보다 이모티콘 하나가 더 강력한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를 음성으로만 들어야 한다면?

시각을 배제한 채 시각물(그래픽)을 이해해야하는 경우에는 듣는 것보다 오히려 만지는 게 더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 촉각까지 동원한다면 비로소 시각장애인도 시각물의 온전한 의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소셜벤처 닷의 고미숙 커뮤니티매니저는 지난 8일 헤럴드경제와 만나 “이모티콘의 촉각 그래픽을 만져보면서 ‘아하, 울고 있는 표정이구나, 싫다는 뜻이네’ 이해할 수 있었다”며 “그래픽을 촉각으로 느낌으로써 사물을 인지하는 폭을 넓히고 비시각장애인과의 소통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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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된 아이패드에 그린 대로 닷패드의 도형도 실시간으로 바뀐다. 주소현 기자

촉각 그래픽의 원리는 지면에서 튀어나온 점을 손가락으로 만져 인식한다는 점에서 점자와 다르지 않다. 점자가 도드라진 점들의 조합을 특정 문자로 정한 약속이자 언어라면, 그래픽은 생김새 그대로 도드라진 점으로 나타내면 된다.

간단해 보이지만 기술력의 한계로 그동안 점자 출력장치로는 그래픽은커녕 짧은 문장 정도만 나타낼 수 있었다. 한번에 나타낼 수 있는 문자가 32개 정도였기 때문이다.

모아쓰기를 하는 한글의 경우 점자로는 초성, 중성, 종성으로 풀어써야 한다. 가령 ‘기쁨’은 한글점자로 문자 6개, 즉 셀이 6개 필요하다. 이렇다보니 셀이 32개 안쪽인 단말기로는 한 문장을 한번에 쓰기도 어려웠다. 중학교 수학만 넘어가도 수식을 한꺼번에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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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에 그린 그림이 닷패드로 표현된다/ [닷 제공]

반면 닷이 개발한 촉각 출력장치 ‘닷패드’는 셀을 320개 갖췄다. 전압을 사용하는방식의 기존 셀이 두껍고 무거웠지만 닷은 자석에 기반한 자체 개발 기술로 셀의 크기는 10분의 1, 가격은 4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많은 양의 정보를 한번에 펼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면서 문자뿐 아니라 곡선, 도형부터 차트, 웹툰까지 각양각색의 그래픽을 점자의 형태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을 찍거나 서명을 해도 곧바로 촉각 그래픽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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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워치 [닷 제공]

최초로 그래픽을 표현하는 촉각 출력장치를 개발해 낸 성과를 인정 받아 닷은 지난 1월 세계 최대 IT·가전박람회인 ‘CES2023’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지난 3일에는 134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이끌어냈다. 닷은 누적 투자액 300억원과 약 120개의 기술 특허를 무기로 국내 공장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처음부터 상용화할 수 있는 장치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주윤 닷 대표는 “처음부터 양산이 목표였기 때문에 작고, 가볍고 값싼 기술로 방향성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닷패드를 개발하기 이전 단계에서 휴대성이 관건인 점자 스마트워치인 ‘닷워치’를 만들면서 오히려 후속 기술 및 제품 개발은 수월하게 풀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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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Barrier-free, 무장애) 키오스크 [닷 제공]

스마트워치 다음은 키오스크였다. 닷은 촉각 출력장치로 정보를 전달하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무장애) 키오스크를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의 대상은 시각장애인에 그치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에게는 수어 영상을 제공한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나 노약자, 키가 작은 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해 높낮이와 각도도 자동으로 조절된다.

“이 이모티콘 무슨 뜻이야?” 그림 읽는 점자로 300억 벌었다
김주윤 닷 대표이사 [닷 제공]

국경도 초월한다. 애초 국내보다는 전세계 시장을 겨냥했다. 지난해부터 4년간 미국 내 모든 시각장애인 학교에 300억원 규모의 닷패드 공급할 예정이다. 점자 장치들은 주로 교구로 활용되고, 키오스크는 공공기관이나 박물관, 상업시설 등에 주로 위치한다. B2B 사업인 만큼 나라별로 시장이 고착화돼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이처럼 닷의 목표는 누구든지 차별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 조성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을 창업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제 목표는 모든 장애인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