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연초 주식시장 랠리에 개인투자자의 증시 참여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투자자예탁금이 1월 한 달 동안 7조원이 증가해 다시 51조원을 넘어서는 등 약 4개월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중단 기대감에 이른바 ‘동학개미’들의 주식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실적 대비 급등한 주가 때문에 적극적인 매수에 뛰어들지는 않고 있는 모양새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1일 증시 대기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51조521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0월 6일(51조7942억원) 이후 가장 큰 금액이다.
투자자예탁금은 지난해 10월 월평균 기준 50조원선이 2년여 만에 붕괴한 뒤로 40조원대를 기록하다가 지난달 9∼10일에 이틀 연속 43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이후 증가하기 시작한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마지막 주엔 47조∼49조원 규모로 늘었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주식을 팔고서 찾지 않은 돈이다. 증시 진입을 준비하는 대기성 자금이기에 주식투자 열기를 나타내는 지표로도 통한다.
2020년 개인투자자가 대거 증시에 뛰어드는 ‘동학개미 운동’이 일어난 뒤 50조원을 돌파했기 때문에 예탁금 규모로 개인투자자의 주식투자 참여 정도를 가늠할 수도 있다.
증시 대기 자금이 증가한 영향 등으로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감소하고 있다. 1월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정기예금 잔액은 812조2500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818조4366억원) 대비 6조1866억원 줄었다. 예금 잔액은 지난해 10월 800조원을 돌파한 뒤 같은 해 11월까지 증가했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증권사 고객 예탁금은 1월 저점인 43조7000억원 대비 7조8000억원이 늘었다”면서 “최근 예적금 금리가 떨어지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관심이 증가했다”고 해석했다.
다만 이런 예탁금 증가세가 개인투자자의 주식 매수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은 지난달 2일부터 최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7조21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주식을 사들이며 상승장을 이끌었다. 외국인의 유가증권시장 순매수액은 7조6802억원이었으며, 코스피는 2220대에서 2480으로 약 11% 올랐다.
계묘년 1월부터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토끼 랠리'에 지수가 급등하자 현재 가격은 밸류에이션(평가가치) 대비 부담스러운 구간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지난달 29일 기준 13.08배를 기록했다. 12개월 선행 PER이 13배를 넘은 건 2021년 4월 이후 처음이다.
향후 1년간 기업실적 전망치에 견준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12개월 선행 PER은 지난해 9∼10배 수준을 유지하며 코로나19 유행 이전 평균으로 회귀했으나 최근 실적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면서 지수가 오르자 PER이 급격히 높아졌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기준 3200∼3300대와 같은 밸류에이션(평가가치) 수준에 도달했다”며 “코스피의 추가 상승을 위해서는 금리 인하(밸류에이션 상승)와 실적 전망 상향이 필요한데 두 가지 모두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어 “금리 인하 기대는 정점을 통과했고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시즌 동안 올해 1분기와 연간 실적 전망은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면서 “최소한 경기·실적 저점이 가시화되거나 펀더멘털(기초여건) 불안을 충분히 반영한 지수대로 내려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