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주요 상장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속속 이뤄지면서 신용등급 강등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최근 발표되는 지난해 기업들 실적을 신용등급 평가에 발 빠르게 반영하며 수익성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6일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신평사들로부터 신용등급을 부여받은 기업들 가운데 지난 1일 기준으로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기업 40곳 중 절반에 가까운 19곳은 작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줄었다.
주요 회사채 발행 기업 가운데 LG디스플레이(A+)의 경우 지난해 영업손실이 2조850억원으로 전년(영업이익 2조2306억원)과 비교해 적자 전환했다. 효성화학(A)도 지난해 3367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내며 전년 대비 적자로 돌아섰다. 효성의 또 다른 계열사인 합성섬유 기업 효성티앤씨(A2+)의 작년 영업이익도 1236억원으로 전년(영업이익 1조4237억원)에 비해 91.3% 급감했다. 그밖에 SK하이닉스(AA·-43.5%), LG생활건강(A1·-44.9%), LG화학(AA+·-40.4%) 등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비 40%대 감소했다.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 윤곽이 드러나면서 신평사들도 신속히 기업 신용등급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가령 2조원대 적자를 낸 LG디스플레이의 경우 나이스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3대 신평사들이 일제히 신용등급 영향 검토에 들어갔다.
특히 한신평은 LG디스플레이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전방수요가 위축돼 당분간 영업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보고, 현금창출력 약화에 손상차손 발생으로 재무안정성도 저하됐다며 무보증사채의 등급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신평사들은 작년 4분기 1조원대 영업손실을 낸 SK하이닉스의 신용도 영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나신평은 “이번 실적 저하가 단기적으로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이라면서도 “반도체 업황 하락 사이클이 장기화하면 재무부담 증가 폭이 예상을 웃돌 수 있어 지속적인 검토를 통해 신용도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신평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신용평가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와 고객사의 공급업체 과잉재고가 겹쳐 올해 신용지표가 크게 약화할 것이라며 아예 SK하이닉스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렸다. 현재 S&P가 SK하이닉스에 부여한 신용등급은 BBB-다.
회사채 시장 투자자들 역시 기업 실적에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롯데지주·케미칼·건설·하이마트 등 상당수 계열사가 ‘부정적’ 등급전망을 부여받은 롯데그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익성 저하 우려를 받아온 롯데하이마트(AA-)는 지난달 총 12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목표 물량은 채웠지만, 연초 회사채 시장 강세 분위기와 양호한 신용도에도 불구하고 발행금리가 민평금리보다 85bp(1bp=0.01%포인트)가량 높게 책정됐다.
역시 등급전망이 ‘부정적’인 효성화학도 부진한 실적 전망과 베트남 화학공장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재무 부담 우려 속에 지난달 중순 1300억원 조달을 위한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기관들이 응찰하지 않아 전량 미매각됐다.
증권가에서는 특히 A등급 이하 비우량 신용등급 기업에 대한 우려가 많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A급 기업의 경우 기업 성장세가 꺾이고 과거보다 높은 금리 수준으로 이자 비용이 증가해 기업의 상환능력이 저하할 것”이라며 “실적 저하로 인한 신용도 하락 국면 진입 속도는 비우량 등급에서 더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