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코로나는 '중국 코로나'라 못하게 하면서, 왜 '중국 설'은 고집하지?"(한 누리꾼 댓글)
음력 설의 영어 표현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 설(Chinese New Year)'이라는 표현을 쓴 아이돌 그룹 뉴진스 멤버 다니엘이 한국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는가 하면, '음력 설'(Lunar New Year)로 표기하자고 주장한 서경덕 교수가 중국 누리꾼들의 공격대상이 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중국 누리꾼들이 SNS로 몰려와 댓글로, 특히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다"며 "중국 설도 훔쳐 가는 한국, 설은 중국인이 발명, 한국인 죽어라 등 어처구니없는 말만 내뱉고 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중국의 음력 설인 '춘제(春節)'는 영어로 번역할 때 'Spring Festival'로 표현한다"며 "설날과는 유래부터 의미까지 아예 완전히 다른 명절"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상고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축제에서 비롯됐다는 '춘제'는 사실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개최 날짜도 자주 바뀌었다"며 "약 2000 년 전인 한나라 때부터 음력 1월 1일로 고정된 것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서 교수는 "중국인들의 삐뚤어진 중화사상과 문화 패권주의적 발상이 아시아권의 보편적인 문화를 중국만의 문화인 양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중국 설'을 주장하며 이를 따르지 않은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영국박물관은 20일(현지시간) 저녁 'Celebrating Seollal 설맞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전통 음악과 무용 등을 소개하는 행사를 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이 행사의 제목과 트위터 등의 온라인 홍보 문구를 문제 삼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Seollal'(설날)이라는 표현을 행사 제목에 넣고, 온라인 홍보 문구에는 'Korean Lunar new Year'(이하 한국 음력 설)라고 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중국 누리꾼 들은 트위터 등에 "'Chinese New Year'(이하 중국 설)이라고 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 문화를 훔치는 걸 명성 높은 박물관이 돕고 있다", "앞으로 '메리 코리아 크리스마스'라고 하게 될 것"이라는 등의 비난글을 올렸다.
심지어 일부는 행사장에도 나타나 공연 중 항의 피켓을 들고 서 있었으며, 큰 소란은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행사가 끝나고 영국박물관 트위터에서 관련 글이 없어진 뒤에도 중국 누리꾼들은 영국박물관의 전혀 관련 없는 게시글에까지 찾아가 수천개의 비난 댓글을 달았다.
영국에선 '중국 설'이라는 표현이 널리 알려져서 학교, 상점 등에서도 많이 사용하지만 최근엔 한국, 베트남 등의 명절이기도 한 점을 고려해서 'Lunar New Year'(음력 설)로 바꾸는 추세다. 영국 총리실 등에서는 공식적으로 'Lunar New Year'(음력 설)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뉴진스의 멤버 다니엘이 지난 19일 소통 앱에서 팬들을 향해 "What R U bunnies doing for Chinese new year?(설날에 다들 뭐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가 논란이 됐다. 바로 삭제하긴 했지만, 굳이 '중국 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됐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표현이지만, 영미권에서는 널리 알려진 용어다. 다니엘은 호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호주에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커지자 다니엘은 21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제 표현은 부적절했고 이 부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뉴진스의 중국 팬들이나 일부 영미권 팬들은 "왜 사과를 하느냐"며 반발하고, 다른 팬들은 "사과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아이돌 가수 BTS도 21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설날 인사로 'Happy Seollal Greeting'이라는 영상을 올렸다. '중국 설', '음력 설'도 아닌 설날의 로마자 표기인 'Seollal'을 사용한 것이다. 논란을 피하려는 고심의 흔적이 보이는 단어 선택이지만, 앞서 영국박물관에서도 'Seollal'이라는 표현까지 문제삼는 이들이 있었다.
케이팝 가수들의 활동 무대가 세계로 옮겨지면서 가수들에게 이같은 표현 선택의 문제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한일 갈등이 불거질 때도 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독도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으로 논란이 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