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방산시장 진출 페널티 면제 등 장점 커
경쟁력 낮은 국내 방산업체들 도태 우려도
“RDP 메기 풀어 우수기업 경쟁력 키워야”
“美와 개발·생산·마케팅 제3세대 방산협력”
〈편집자주〉2027년 세계 4대 방산수출국! 대한민국이 향후 5년 뒤 ‘세계 방산 4강’의 꿈을 향해 뛰고 있다. 6·25전쟁 당시 소총 하나 만들지 못하던 나라였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K-방산’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남북분단 속에서 국가안보에 기여할 뿐 아니라 동남아와 남미를 넘어 유럽까지 진출하며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미국, 영국 현지 취재와 폴란드 방한 인사 인터뷰, 미국, 인도네시아 관계자와 화상인터뷰 등을 통해 K-방산의 오늘을 조망하고 내일을 모색한다.
[헤럴드경제=신대원·김성우 기자] ‘K-방산’이 수출 20조원 시대를 맞았다. 올해 대한민국 방산 수출 수주액은 약 22조5000억원(170억달러)으로, 1970년대 방위산업에 뛰어든 지 5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남북분단 현실에서 국가안보를 뒷받침하는 강병(强兵)과 미래 먹거리, 첨단산업을 견인하는 부국(富國)을 아우르는, 말 그대로 ‘부국강병’의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K-방산이 가야 할 길도 멀다. 당장 몇 년 내 현실화될 한국과 미국 간 ‘상호국방조달협정(RDP-MOU)’은 기회인 동시에 위기가 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韓美 RDP, ‘천조국’ 美 방산시장 진출 열쇠=방산업계와 전문가들은 성격과 구속력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기피하지만 RDP는 통상 ‘방산 자유무역협정(FTA)’으로도 불린다. RDP는 상대국에 대해 방위산업 문호를 개방하는 협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다만 현재 방산업계 안팎에서도 생소하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RDP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RDP를 둘러싼 논의 개시를 포함해 국방 부문 공급망과 공동 개발, 제조 등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이후부터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신범철 국방부 차관과 강환석 방위사업청 차장을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하고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유관 부처 당국자와 출연기관, 한국방위산업진흥회(방진회),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본격적인 전략 수립에 돌입했다.
미국이 동맹국이나 우방국과 상호 조달제품 수출 입시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완화하기 위해 체결하는 RDP는 각국 방산시장 개방과 관련한 법적 권리와 의무 등을 내용으로 한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호주 등 28개국과 협정을 맺고 있다. 특히 글로벌 불안정성이 고조된 최근에는 미국이 방위산업을 뛰어넘어 동맹국 및 우방국과 포괄적 관계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성격이 한층 짙어진 모양새다.
미국과 RDP를 체결한 국가는 미 국방부 조달사업 참여 시 ‘미국산 우선구매법’에 의거해 부과되는 가격 페널티 적용 면제와 특정 제품 미국산 구매 의무 면제, 국방 조달제품 관세 등 세금 면제 혜택을 받는다. 반면 기술특허권 침해 논란과 연구인력 해외 유출, 국내 방산업체 도태, 미 진출 이익보다 커질 국내 시장 개방에 따른 손실 등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미국이 이미 1970~80년대부터 한국에 RDP 체결을 제안했음에도 한국이 수용하지 않은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한미 RDP 체결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방위산업이 국가안보 기여는 물론 미래 신성장동력이자 국제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에 따른 것이다. 사실 K-방산 도약을 위해서도 세계 최고이자 최대인 ‘천조국’ 미국 시장을 못 본 척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방사청 “우리 기업 이익을 위해 미국과 협상”=전문가들도 한미 RDP 체결이 필요하다는 데에 대체로 입을 모은다. 길병옥 충남대 교수는 “미국 방산시장이 가장 큰 데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 전 세계 진출이 가능해지는데 RDP가 없다면 상당히 많은 제약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전 세계 방산 분야 부품공급망 참여를 위해서도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현재 한국 방산업체들은 향후 2~3년 내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장갑차(OMFV)사업과 해군 고등훈련기·전술훈련기 및 공군 전술훈련기사업, 그리고 유도로켓 사업 등 미 방산시장 진출을 모색 중인데, 단순 적용은 무리가 있지만 한미 RDP가 체결되지 않을 경우 이미 협정을 맺고 있는 경쟁국에 뒤처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지어 RDP가 없을 때 적용되는 ‘미국산 우선구매법’은 미국 내 사용을 위한 공공 조달 비용평가 시 미국산 최종 제품이 아닐 경우 가격을 50% 할증하도록 하고 있는데 오는 2024년 65%, 2029년에는 75% 이상 상향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길 교수는 “한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방산 수출에서 잠깐 빛을 보고 있지만 이후에는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한국도 앞으로 새 사업을 찾아야 하는데 미국 시장 진출이 바람직한 방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조선이나 철강이 그랬듯이 방위산업도 어느 정도 국내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하면 20조원도 안 되는 작은 시장에서 도토리 키 재기만 해서는 안 된다”며 “진검승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연구위원은 한국과 비슷한 고민을 했던 일본이 최근 문구 수정 없이 RDP를 연장한 것을 언급하면서 한미 RDP 체결이 K-방산 체질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지금 한국 방산은 외부에서 소재·부품·장비 등을 도입해 체계종합 위주로 하다 보니 허리가 약한데 RDP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일부 도태되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메기를 몇 마리 풀어놓음으로써 경쟁력을 키워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할 확률이 커진다”고 전망했다. 또 “RDP는 다른 국가들이 그랬듯이 구제장치 등 협의 과정에서 매우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며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정 불리한 조건은 나중에라도 수정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구축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국익을 우선해 RDP 협상에 임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 관계자는 “RDP는 체결국 국내법률 및 규정에 합치되는 범위 안에서 협정을 체결하도록 돼 있다”며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우리 기업의 이익을 위해 미국과 협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RDP를 계기로 방산 최선진국인 미국과 무기 체계 개발부터 생산, 마케팅까지 공동으로 협력하는 제3세대 방산 협력을 통해 국내 국방기술 수준을 한 단계 더 도약시켜 대한민국 무기 체계의 수준도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헤럴드경제=특별취재팀 신대원·김성우 기자, 우원희·김정률·박정은 PD, 이윤지CP
*본 기획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취재·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