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태생 세계적 미술가 엘 아나추이
럼주 뚜껑을 접고 구부려 만든 금속 태피스트리작업
지워진 역사 끝 살아남은 자들의 연대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엘 아나추이는 럼주의 병뚜껑을 구리끈으로 엮어 금속 태피스트리처럼 만든다. 여러번 두드려 얇고 납작해진 병뚜껑 수 백, 수 천개가 모인 것만으로도 장엄한 풍경이다. 노랗고 빨간 금속 조각은 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붉은 빛으로 반짝인다.
엘 아나추이의 작업은 아프리카 후기 식민주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는 평을 받는다. 테피스트리를 만들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동원된다. 하나의 거대한 아티스트 스투디오다. 작가는 마을 공동체와 함께 버려진 병뚜껑을 작업으로 승화한다. “사람들이 만져 숨결이 닿은 것은 그 사람의 DNA나 에너지가 남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재를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생겨나고 역사와 이야기가 전달된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역사는 이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잔혹한 노예사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배에 실려 아메리카로 넘어왔다’는 짧은 문장에 다 담을 수 없는 숨은 이야기들이다.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는 대서양 노예무역의 중심도시 중 하나였다. 2001년 시의회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사바나 강변 리버 스트리트에 기념비를 세운다. '아프리칸 어메리칸 기념비(African-American Monument)'는 노예선을 타고 이 땅에 끌려온 흑인 가족을 묘사한다. 그들의 발치엔 쇠사슬이 널려있다.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마야 안젤루(1928-2014)는 이 기념비에 “우리는 우리를 도둑맞아 아프리카 대륙에서 끌려왔다. 우리는 노예선에 함께 탔다. 노예선 바닥에 누워 서로의 배설물과 오줌속에 함께 왔고, 함께 죽었다. 생명이 빠져나간 몸은 밖으로 던져졌다. 오늘 우리는 믿음과 작은 기쁨으로 함께 서 있다”고 헌사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참극은 사실 아주 작은 욕심에서 출발한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노예무역은 영국 식민지였던 뉴잉글랜드-서인도제도-서아프리카를 잇는 삼각무역이다. 당시 유럽 열강은 설탕과 술(럼주)을 싸게 공급받고자 아메리카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기온이 따뜻하고 습한 서인도제도에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을 운영하고, 이곳에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공급받았다. 상선들은 사람을 싣고와서 설탕과 당밀을 받아 뉴잉글랜드로 향했다. 그곳에서 설탕과 당밀을 럼주로 만들었고, 럼주를 실은 배는 다시 아프리카로 향했다. 당시 럼주 1병이면 노예 1인을 구할수 있을정도였다고 한다. 술 한 병이 사람 한 명으로 책정되는 불공정계약이라고 할지라도, 1526년부터 1967년까지 노예로 실려온 아프리카인은 약 125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돼 노예선에 승선했기에, 살아서 도착한 인원은 약 1100만명 정도였다.
엘 아나추이가 선택한 럼주 뚜껑 1개는 1인의 생명값인 셈이다. 버려진 뚜껑을 재활용 하는 그의 작업은 지금도 ‘버려져버린’ 흑인의 역사와 ‘찾아내야 하는’ 목소리다. 조각과 조각을 잇는 구리끈은 역사를 잇는 연결고리이자 쉽게 잊혀지는 지식과 기억을 은유한다. 지금 서울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와 바라캇 갤러리에는 엘 아나추이의 작업을 만날 수 있는 ‘엘 아나추이:부유하는 빛’전을 진행중이다. 특히 바라캇 컨템포러리에는 가로 8미터 세로 6미터에 달하는 대형 신작이 걸렸다. 거대한 금속 태피스트리는 주름지고 구부러져 인간의 피부처럼도 느껴진다. ‘분리되어 있는 부분을 묶어 삶을 예술로 바꾸는 것’. 엘 아나추이 작업의 핵심이다. 2015년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선 그의 예술적 성취를 기념하고자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Lifetime Achievement)을 수여하기도 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9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