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광폭 스킨십 후 떠난 빈 살만
국내 기업들과 26건의 계약· MOU 체결
3년 전 맺은 MOU 중 절반만 사업화
집요한 민관 후속노력 뒤따라야
사업수주·엑스포 ‘두 마리 토끼’ 잡는 기지 절실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의 1박 2일의 짧지만 강렬했던 방한 일정이 마무리됐다. 한·사우디 수교 60주년을 맞아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빈 살만 왕세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측 인사 뿐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와도 접견에 나서는 등 민관에 두루 걸친 광폭 스킨십을 보였다.
이 기간 중 양국은 에너지, 방위산업, 인프라, 건설 등의 부문에서 총 26건의 계약·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중 6건은 한국 민간 기업과 사우디 정부 간, 17건은 공기업이 포함된 한국 기업과 사우디 기관·기업 간, 3건은 사우디가 투자한 기업(S-OIL)과 국내 건설사들 사이에 맺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맺어진 투자협약 규모는 300억달러(약 40조원)에 달한다. 국내 정유사인 S-OIL은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인 사우디 아람코가 대주주인데, S-OIL은 그의 방한에 맞춰 역대 최대 규모인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의 석유화학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두 나라는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이런 분위기 속 총사업비 5000억달러(약 670조원) 규모의 사우디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수주 결실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미래 모빌리티,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산업 부문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활약이 예상된다. 이에 1970년대 건설업 주도로 일어난 중동붐에 필적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제2의 중동 특수’가 올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수십건의 MOU를 실제 본계약으로 이어지게 하는 민관 공동의 후속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는 말 그대로 양측이 서로 이해한 바를 확인·기록하기 위한 절차로, 그 자체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지난 2019년 빈 살만 왕세자가 한국에 왔을 때도 8건의 MOU를 맺었지만, 이 중 실제 사업으로 성과를 나타낸 것은 4건에 그쳤다. 이 4건도 정유, 석유화학 등 아람코와 연관성이 높은 것들이다.
이번 방한은 3년 전보다 MOU 건수도 훨씬 많고, 수면 위로 떠오른 프로젝트(네옴시티)도 있어 사업 구체화 전망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양국 정상이 전략 파트너십 위원회라는 직통 라인을 신설, 이를 지원하기로 한 것도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최종 계약서에 사인할 때까지 민관의 기민한 협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얼마 전 대만 반도체 기업(글로벌웨이퍼스) 투자를 다른 나라에 아쉽게 빼앗긴 전례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또 공교롭게도 사우디는 우리나라와 2030 세계박람회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사우디 수주와 엑스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두 마리 모두 놓칠 수도 있다. 민관의 전략적 기지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