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장 난립에 파괴되는 숲
메콩강 하류와 바다 만나는 ‘맹그로브숲’
양식에 필요한 해수 얻기쉽고 양분 풍부
새우 양식산업 성장...숲 40% 가까이 파괴
1ha 숲은 자동차 900대 배출 탄소 흡수
사라진 숲에선 이미 생태계 교란 시작
“이 지역의 구글 위성지도를 보고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아무래도 베트남이라 그런지 논농사를 정말 많이 짓는다고. 하지만 이건 논이 아니에요. 맹그로브 숲을 파괴하고 만든 새우양식장이죠.”(김항석 맹그러브 대표)
베트남 호찌민 시내에서 약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짜빈성 외곽 지역. 이곳은 티베트고원부터 인도차이나반도를 가로지르는 4000여㎞ 길이 메콩강 하류에 자리한 곳이다. 메콩강 삼각주는 생물 다양성으로 따지면 아마존 바로 다음이라는 평가받는다.
처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강 옆이라는 점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울창한 숲만 보여서다. 숲 사이에 난 길을 따라 100여m를 걸어나가자 비로소 강이 보였다. 강과 맞닿은 질척한 땅에 숲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지나온 숲이 바로 맹그로브 숲입니다.”
맹그로브란 열대 및 아열대 지역의 기수역, 즉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 바닷물과 서로 섞이는 곳에서 자라는 70여개종 나무를 통칭하는 말이다. 통상 바닷물은 식물 성장에 치명적이지만, 맹그로브는 오히려 염수에서 양분을 얻는다.
맹그로브 숲의 냄새는 흡사 강화도 갯벌이나 순천만의 냄새와 비슷했다. 실제 게와 짱뚱어도 관찰할 수 있었다. 맹그로브 나무의 뿌리는 어류나 갑각류 등 다양한 해양 생물에 서식처를 제공한다. 울창한 숲 사이에서 관찰되는 짱뚱어의 모습은 맹그로브의 생태적 가치를 가늠케 했다.
하지만 감탄은 이내 탄식으로 바뀌었다. 취재팀이 드론 카메라를 띄워 하늘에서 주변 지역을 조망하자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숲이 깎여 나간 모습이 포착됐다. 흡사 테트리스 게임에서 네모 블록으로 빈 화면을 채워나가는 것 같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 거대한 블록들은 바로 새우양식장이다.
새우양식장은 맹그로브 숲을 파괴하는 주범이다. 새우를 양식하려면 바닷물을 끌어와야 한다. 여기에 새우가 먹고 자랄 영양분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바닷가에 형성되고, 동시에 각종 생물의 서식처이기도 한 맹그로브 숲을 새우양식업자들이 가만두지 않았던 이유다. 이렇게 조성된 새우양식장의 수명은 3~4년에 그친다. 새우의 배설물이나 사료 찌꺼기, 세균 등에 의해 결국 새우를 키울 수 없는 환경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에 업자들은 바로 옆 다른 숲을 벌채해 새로운 양식장을 짓는다. 실제, 운영이 중단돼 바닥을 드러낸 양식장은 잡초마저 자라지 않는 검녹색 황무지로 바뀌어 있었다.
짜빈성 일대에서 맹그로브 식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계 사회적기업 ‘맹그러브(MangLub)’의 김항석 대표는 “새우양식이 열대우림에 불을 지르는 화전 농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맹그로브는 세계에서 가장 위협받는 생태계로 꼽힌다. 40년 전만 해도 전 세계 맹그로브 숲 규모는 남한 면적의 2배에 육박하는 약 1900만~2000만ha(헥타르)에 달했다. 하지만 1980년 전후 동남아, 남미 지역에서 새우 양식 산업이 성장하면서 현재까지 숲의 40% 가까이 파괴됐다. 맹그로브 숲이 파괴되는 속도는 전 세계 산림벌채 속도보다 3~5배 빠르다는 분석이다.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긴 했지만, 아직도 전체 숲 면적은 감소하는 추세다. 세계자연기금(WWF) 등 주요 환경단체가 함께 설립한 ‘글로벌맹그로브얼라이언스(GBA)’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2016년까지 연평균 1만5300ha 규모의 숲이 파괴됐다. 매년 여의도 면적의 50배가 넘는 맹그로브 숲이 파괴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2010년 이후 자행된 맹그로브 숲 파괴의 40%는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맹그로브 숲의 가치는 비단 다양한 생물에 서식지를 제공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맹그로브 숲은 일반 열대 우림보다 최대 4배 많은 탄소를 저장한다. 일반 산림보다 수배 깊고 습한 토양을 통해 죽은 잎이나 가지 등 유기물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ha의 맹그로브 숲으로 흡수하는 탄소량이 연간 1472t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는데, 이는 약 900대 이상의 자동차가 1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량과 비슷하다.
숲을 파괴하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다시 복원하는 데에는 수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맹그러브에 따르면, 베트남의 경우 1ha 면적에 2500그루 맹그로브 나무를 심는 데에 약 1000만원이 필요하다. 복원할 토지를 확보하고 자금을 지원할 투자자를 찾는 것도 난제이지만, 탄소 흡수원으로서 역할을 할 때까지 5년여를 무사히 키워내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김항석 대표는 “묘목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면 나무가 심어질 곳과 유사한 환경을 갖춘 별도 양묘장에서 1년간 길러 옮겨 심어야 한다”며 “결국 강변, 해변에서 어린나무를 키워야 하는데 이미 곳곳이 미세 플라스틱으로 오염돼 생장이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김 대표가 안내한 양묘장은 맹그로브 숲을 사이에 두고 강물로부터 수십미터 떨어져 있었는데, 그럼에도 조수간만의 차로 물이 차오를 때마다 밀려온 각종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맹그로브 숲이 사라진 사이, 생물 다양성이 약화하면서 생태계가 교란된 것도 맹그로브 숲 복원의 장애물 중 하나다. 상위 포식자가 없어진 환경에서 무분별하게 개체 수가 늘어난 따개비가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숲이 파괴되면서 따개비의 천적도 사라졌다”며 “어린나무를 따개비로부터 보호하려고 설탕을 집어넣은 봉투를 나무에 매달거나 울타리를 설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임시방편으론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베트남 짜빈=김상수·최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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