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칼럼 ‘車 디자인 철학’
어린시절 ‘포르쉐 356’ 보고 자동차에 매료
내 최고 작품, 재규어 전기 SUV ‘I-페이스’
만드는 사람·구매하는 고객 성향까지 반영
전기차시대 디자이너에 창의성 발휘 기회
2019년 자동차·제품디자인 회사 ‘칼럼’ 설립
스케치부터 생산까지 소규모 고객과 협업
우리가 직접 우리車 디자인하는 바람 있어
“디자인은 자동차 브랜드의 전부입니다. 자동차 디자인은 브랜드의 가치와 스토리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차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 차를 구매하는 고객들의 성향까지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오는 27일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22’의 연사로 나서는 이안칼럼 디자인 디렉터 · 칼럼(CALLUM) 창립 이사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이같이 정의했다.
1956년 ‘포르쉐 356’을 처음 본 어린 칼럼은 한눈에 자동차에 매료됐다. 1979년 포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시작했고, 1999년엔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재규어’에서 디자인 총괄 디렉터가 됐다. 2019년엔 본인의 이름을 딴 자동차 및 제품 디자인 회사 ‘칼럼’을 설립했다.
자동차 디자인에 평생을 바친 그는 디자인에서 변하지 않는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강연 주제를 ‘급변하는 자동차 디자인, 변하지 않는 디자인 철학’(Design philosophy in a changing world of car design)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칼럼은 특히 럭셔리 브랜드 일수록 철학과 더불어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재규어는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성능을 갖춰 재규어만의 가치와 스토리를 완성한 회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칼럼은 “역사적으로 재규어는 스타일 그 자체였다”며 “재규어를 설립한 윌리엄 라이온스가 만든 차는 무엇보다 시각적인 요소를 중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1950년대 르망 24시에서 여러 번 우승하며 성능 또한 재규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매김했다”고 덧붙였다. 르망 24시는 세계 정상급 자동차 경주 대회로, 24시간 동안 쉼 없이 서킷을 돌아 우승자를 가린다. 레이싱카에 가혹한 경기로 유명하다.
칼럼은 재규어에서 준중형 세단 ‘XE’, 중형 세단 ‘XF’, 대형급의 ‘XJ’, 재규어 최초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F-페이스’ 등의 디자인을 총괄하며 재규어만의 브랜드 스토리를 쌓아갔다. 특히 칼럼은 전기 SUV ‘I-페이스’를 자신의 최고 디자인으로 꼽았다.
칼럼은 “I-페이스에선 전기차 플랫폼이 주는 자유로움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비율을 구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실제 I-페이스는 공개 당시 SUV임에도 스포츠카를 떠올리게 하는 라인, 공기역학적 설계 등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가장 아름다운 양산차로 꼽히는 컨버터블 스포츠카 ‘F-타입’, 콘셉트카 ‘CX-75’ 등도 칼럼을 상징하는 대표작이다.
쿠페형 스포츠카 ‘애스터마틴 뱅퀴시’는 칼럼이 특히 아끼는 차다. 칼럼은 뱅퀴시를 세상에 내놓은 지 20년이 지난 후, 이 차를 수정한 버전인 ‘애스턴마틴 칼럼 뱅퀴시 25’를 선보이기도 했다. 칼럼은 “20년이 지나고 다시 과거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현시대의 발전된 디자인·소재·제조 공정을 활용, 독창성을 가진 한정판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칼럼은 전기차 시대가 디자이너에겐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라 평가했다. 그는 “현재 다수의 전기차가 평범한 외형을 갖고 있지만,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특성상 엔진룸이 사라지고 평평한 플랫폼으로 실내 공간이 넓어지는 만큼, 디자인 유연성도 확장될 것으로 내다봤다. 칼럼은 “앞으로 실내 크기를 더 강조하고 휠베이스 내에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려는 추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칼럼은 재규어에서의 경험을 뒤로하고 지난 2019년엔 디자인 회사 칼럼을 차렸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통해 더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서다. 가구, 오토바이,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품을 중소 제조업체들과 협력해 만들고 있다.
싱글몰트 언피티드 스카치 위스키인 ‘칼럼 529 바이 애넌데일’(CALLUM 529 by Annandale)의 병을 직접 디자인한 것도 그에겐 새로운 도전이다. 칼럼은 “한정판 위스키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자유를 누리는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시각의 접근법을 사용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름다울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원활하게 작동하는 걸 만드는 게 목표”라며 “회사 칼럼은 디자인 스케치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고자 주로 소규모 고객과 협업하고 있다. 궁극적으론 우리의 차를 우리가 직접 디자인하는 것이 바람”이라고도 덧붙였다.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