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조인가 흉조인가” 개화 후 한두달새 말라죽었다
담양, 나주, 하동 등 남부지역 대숲 고사목 확산
전문가들 “가뭄・기후변화 영향” 현장조사 필요
주민 “나라에 어려운 일 생기는 것 아니냐” 우려
[헤럴드경제(담양)=서인주 기자] “나가 나이가 일흔 넷인디, 100년만에 핀다는 대나무 꽃이 확 피더니 한꺼번에 말라죽는 것은 처음보는 일이여. 이것이 길조인가? 흉조인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랑게”
땡볕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15일 오전.
‘대나무 고장’으로 알려진 전남 담양군 용면에서 만난 한 촌로는 말라 비틀어진 대나무를 만지작거렸다. 이미 생명력을 잃은 대나무는 처음의 푸르름을 잃고 갈색으로 변해버렸다. 집 근처 어른 팔뚝만한 대나무는 휘어진 채 마당을 덥쳤다. 그가 소유한 400여평 대밭 상당수가 비슷한 상황이다.
젊은시절 정읍장에서 대나무돗자리 장사를 했다는 서남철씨(74)는 “대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고 한두달 사이에 말라죽는 일은 보기 힘든 현상이다. 죽순도 덜 나오고 있다” 며 “농작물이나 다른 나무들에게 병충해 등을 옮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담양군 전체 대나무밭 면적 2599㏊ 가운데 이같은 고사증상은 곳곳으로 확산하는 상황이다.
산림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서는 2만2042㏊ 면적에서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이 중 전남에는 40%에 달하는 8183㏊가 분포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대나무꽃은 피기 시작했다. 밥알 같기도 하고 보리새순을 닮기도 한 대나무꽃을 마을 주민들은 호기심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전쟁이나 큰일이 터질 때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주춤하던 코로나19도 늘기 시작했다.
대나무바구니 장인 구복순(68)씨는 “살다가 이런일은 처음 봐요. 보다시피 담양은 천지가 대나무로 둘러쌓여 있는데 돌아보면 많은 대숲이 누렇게 말라 죽어 있어요”라며 “코로나도 그렇고 나라에 다른 우환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듭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나무축제 등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부상한 담양에서 대나무는 단순한 목재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예로부터 죽제품을 만들어 팔아왔고 춘궁기에는 부족한 식량을 죽순이 해결해줬다. 매일 보는 것이 대나무다 보니 정서적 연대감도 생겼다. 황금연휴를 맞은 주말 맹죽종 등 대나무를 테마로 삼은 죽녹원과 관방천 일대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전남 나주에 자리한 전남산림자원연구소 내 대나무 군락에서도 이와 비슷한 증상이다.
대나무군락에서 꽃이 피는 현상을 보인 후 잎과 줄기가 말라갔다. 대나무 개화와 말라죽는 현상은 나주와 담양, 광양에 이어 사천과 하동 등 경남 지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뭄과 기후변화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대나무꽃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결방안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뿌리번식을 하는 대나무는 영양이 부족해지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고, 이때 자신에게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 꽃을 피워 씨를 다른 지역으로 날려 다음세대에 대비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득실 전남산림자원연구소장은 “잎이 말라가기 시작하면서 이어 줄기도 상태가 안좋은 상태”라면서 “대나무 고사에 대한 과학적인 원인 파악과 장기적인 관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대나무 개화가 올해처럼 대규모로 발생한 건 처음이며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면서 “개화된 꽃들을 이용해 유전 분석, 환경 분석을 진행중이다. 올 하반기 전남 대나무밭 40여 개소를 실태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