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에서 제국 우뚝선 튀르크사 조명

반도 작은도시에서 지중해 패권 쟁취

법치와 다민족·다문화 로마와 닮은 꼴

콘스탄티노플 정복, 중세시대 막내려

쉴레이만왕 정복 완성 16세기 전성기

변화·혁신에 실패…1차대전으로 몰락

[북적book적]세계사 흐름 바꾼 대제국…영욕의 튀르키예 600년
“유럽의 엄청난 변화 속에 오스만 제국은 세계 경제체제에 통합되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해양 기술 발달로 대항해 시대를 맞아 유럽인들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무역을 하게 되었는데, 오스만 제국에는 이것이 불운이자 재앙이었다.”(‘오스만 제국 ’600년사’에서)

터키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화려함과 찬란한 아름다움을 현대의 쇠락한 젯빛 도시 이스탄불과 대비시키며 상실감과 자부심을 종종 소설로 형상화했다.

옛 영광은 찾아볼 길 없지만 제국의 후예들이 느끼는 그런 자긍은 비단 파묵만 느끼는 건 아닌 듯하다. 최근 터키가 국가 표기를 튀르키예로 바꾸기로 하면서 새삼 터키인의 조상 튀르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서양사에서는 잊혀진 제국이지만 튀르크인이 세운 오스만 제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오래 존속한 제국 중 하나였고, 이전 콘스탄티노플이었던 이스탄불은 세계 최정상 도시였다.

[북적book적]세계사 흐름 바꾼 대제국…영욕의 튀르키예 600년

터키 전문가인 이희철 서울디지털대 객원교수는 ‘오스만제국 600년사’(푸른역사)에서 터키 공화국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을 로마 제국과 나란히 놓는다. 반도 작은 도시에서 출발해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처럼, 오스만 제국도 아나톨리아반도 작은 도읍에서 출발, 거대한 군사제국이 됐다. 두 제국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고 법치와 다민족· 다문화 형성, 독특한 종교와 문화 등 닮은 점이 많다.

책은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건국부터 현대까지 한 줄로 꿰는 편년체로 구성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인 튀르크인들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로 표현되는데, 특히 두 번의 이주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첫 번째가 흉노의 일파인 훈족이 유럽의 게르만족을 침략한 사건으로, 훈족에 밀린 게르만족이 연쇄적으로 로마를 침공, 결국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세계는 고대가 끝나고 중세가 열리게 된다. 두 번째는 튀르크족 중 가장 규모가 큰 오구즈족의 대이동으로 건설된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사건이다. 비잔티움이 몰락하고 세계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게 된다.

이 오구즈족이 오늘날 터키인의 가장 가까운 조상이다. 샤머니즘을 따르던 오구즈족은 10세기경 이슬람 수니파에 귀의, 동화된다. 11세기 중후반엔 이란과 비잔티움과의 전투에서 잇따라 승리, 대셀주크 제국을 형성하게 된다. 아랍·이슬람· 페르시아 등 세계의 찬란한 문명을 한꺼번에 손에 쥐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왕권 다툼과 극단 시아파 교주의 암살 테러 등으로 제국은 한 세기 만에 단명하게 된다. 제국의 본토에서 떨어져 나간 셀주크 분국도 제국의 약화를 부추겼다. 그 중 아나톨리아 셀주크조는 십자군의 횡단로에 위치, 십자군 전쟁을 치러야 했고 이후 1200년대 초중반엔 몽골의 속국이 되고 만다.

아나톨리아 셀주크 왕조에 직접적 위협을 가한 몽골세력은 페르시아 지역에 있던 일 칸국으로, 문화예술면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예술과 과학기술을 후원하고 대규모의 이슬람 모스크와 기념비적 건축물들을 세웠으며, 특히 페르시아의 세밀화 전통을 새롭게 발전시켰는데, 이는 셀주크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몽골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셀주크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는 시기에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작은 토후국이 출현, 13세기 말~14세기 초엔 비잔티움에 거대한 위협으로 등장하게 된다.그 중 오스만은 강력한 세력으로 떠오른다.

오스만은 비잔티움의 상업도시 부르사와 유럽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아드리아노플을 정복한 데 이어 세르비아와의 코소보 전투 승리, 왈라키아(루마니아) 침략, 불가리아전 승리 등 제국의 영토를 넓혀갔다.

그러나 바예지드의 정복 전쟁은 티무르 제국의 세력 확장으로 막히고, 1402년 앙카라대전으로 티무르에 무릎을 꿇게 된다.

11년간의 술탄 공백에 이어 오스만 제국을 재통일한 메흐메드 1세에 이어 무라드 2세는 바예지드가 이뤘던 오스만 제국의 군사력과 통치력을 모두 회복한다. 특히 제2차 코소보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다음 술탄인 메흐메드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튀르크의 오랜 정복 전쟁의 중심은 늘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이런 숙원을 푼 이가 메흐메드2세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콘스탄티노플 정복이었다. 해상장악으로 얻을 상업적· 문화적 이득 등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이곳을 정복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봤다. 1453년 5월29일 정복된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개명, 로마제국처럼 행정과 군사가 집중된 ‘술탄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오스만 제국은 1453년부터 1600년까지 최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40년간 지중해패권을 장악한 쉴레이만은 조부 메흐메드2세의 정복 전쟁을 완성했다. 베오그라드, 로도스섬, 헝가리 정복으로 이어지는 위력에 유럽은 떨었다. 역사가들은 16세기를 ‘터키인의 시대’,‘쉴레이만의 시대’로 부른다. 셀림 1세는 원정때 책 제본가, 서예가, 금박공예가, 화가 등 예술가들을 데려와 오스만 제국의 예술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러나 17세기 들어 오스만 제국은 영토 확장이 둔화되고 술탄의 권위 추락과 통치 위기를 맞으면서 긴 정체기에 들어간다. 18세기엔 중앙집권체제가 약화되고 영토가 상실되며, 이후 개혁에 대한 저항과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향한 민족주의 열풍 등으로 오스만 제국은 위기를 맞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하게 된다.

저자는 비잔티움 제국 변방의 작은 토후국이 세계 강국으로 성장하고 확장하는 과정과 함께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의 급속한 변화에 오스만 제국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변화와 혁신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간다.

오랫동안 튀르크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탐색해온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600년 튀르크 역사를 오롯이 정리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오스만 제국 600년사/이희철 지음/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