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속으로]

“천안함, 북한 어뢰로 침몰” 12년만에 확정

‘좌초설’ 주장 신상철, “재조사하라는 의미” 주장

법원 판단은 ‘명예훼손 성립 안한다’는 의미

文정부 군사망사고진상위 재조사 논란도 불거져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했다가 명예훼손죄로 재판에 넘겨진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위원의 무죄가 기소 11년여 만에 확정됐다. 대법원은 지난 9일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신 전 위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같은 날 재판을 마친 신 전 위원이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했다가 명예훼손죄로 재판에 넘겨진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위원의 무죄가 기소 11년여 만에 확정됐다. 대법원은 지난 9일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신 전 위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같은 날 재판을 마친 신 전 위원이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비접촉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돼 침몰했습니다. 좌초 후 잠수함 등과 충돌하여 침몰했다는 피고인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2020년 10월 서울고법 형사법정에서는 천안함 침몰 원인이 명확하게 제시됐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건드리지 않고 법리적 판단을 하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상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법정에서 확정된 것은 항소심 판결을 통해서였다. 이 판결은 지난 9일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천안함이 침몰한 것은 2010년 3월 26일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12년이 걸렸다. 당시 민관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은 천안함이 어뢰 폭발로 인해 선체가 절단돼 침몰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음모론이 언론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장기간 논란에 휩싸였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신상철 씨는 정치평론 웹사이트 ‘서프라이즈’ 대표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추천으로 천안함 합조단에 위촉됐지만, 단 1회만 회의에 참석했다. 1982~1984년 해군 장교로 복무한 경력도 있다. 신씨는 ‘이명박 정권은 선체 조기 인양과 생존자 구출을 원하지 않았다’며 정부와 군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은폐·조작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 천안함이 1차로 좌초하고 불상의 선박 혹은 미국 군함과 충돌했다는 내용이었다.

신씨는 지난 9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사고 원인과 관련해 (항소심 재판부가)북한 소행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두 가지 단서조항이 있었다, 프로펠러 휘어짐 현상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으로, 재조사하라는 의미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최원일 천안함장을 비롯한 천안함전우회는 지난 12일 새로운 천안함 진수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과 관련 방심위의 천안함 음모론에 대한 문제없다는 처분에 따른 대응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1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진수식을 가진 신형 호위함(FFX Batch-II) 7번함 천안함의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없음). [헤럴드경제DB]
최원일 천안함장을 비롯한 천안함전우회는 지난 12일 새로운 천안함 진수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과 관련 방심위의 천안함 음모론에 대한 문제없다는 처분에 따른 대응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1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진수식을 가진 신형 호위함(FFX Batch-II) 7번함 천안함의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없음). [헤럴드경제DB]

하지만 신씨가 무죄를 확정받은 이유는 천안함 좌초설과 무관했다. 대법원이 상고심 단계에서 밝힌 쟁점은 ▷명예훼손 피해자가 특정됐는지 ▷허위 인식과 비방의 목적 인정 여부 ▷천안함 침몰 원인에 관해 반복해 의혹을 제기한 경우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 등이었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판단은 따로 없었다.

항소심 단계에서도 법원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비접촉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돼 침몰하였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됐다”고 못박았다. 신씨의 말대로 천안함의 우현 스크루가 ‘S자’ 형태로 변형된 것, 함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 분석에 관해 학자들의 의견이 상이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증거들이 어뢰로 인한 침몰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신씨가 의혹을 제기한 것이 그 자체로 국방부 장관, 해군참모총장, 합조단 위원 등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킨다고 보기 어렵고, 신씨가 순전히 비방 목적으로 음모론을 주장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1·2심 법원은 오히려 선체 내부에 화염, 화재, 열상 흔적이 없는 것은 비접촉폭발의 전형적 현상으로, 어뢰 침몰의 근거가 된다고 봤다. 신씨의 말대로 충돌이 있었다면 당연히 남아있어야 할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수중 비접촉 폭발 용도로 제작된 어뢰는 신체 손상이 아닌 배의 선체에 충격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선원들의 시신에서 관통상이나 파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제시했다. 이 밖에 발견된 어뢰가 북한이 해외에서 수출하기 위해 제작한 ‘CHT-02D 어뢰’ 설계도면과 크기와 모양이 일치하고, 천안함이 해안가로부터 2.5㎞ 이상 떨어져 항해하고 있어 암초에 걸릴 위험이 없었던 점도 감안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호국영웅 초청 소통식탁’ 행사에 앞서 천안함 희생자인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와 함께 고인의 사진을 보고 있다. 해당 오찬에는 천안함 생존 장병과 희생자 유족, 천안함 실종자 구조 과정에서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 유족, 연평해전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희생자 유족 등 20명이 참석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호국영웅 초청 소통식탁’ 행사에 앞서 천안함 희생자인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와 함께 고인의 사진을 보고 있다. 해당 오찬에는 천안함 생존 장병과 희생자 유족, 천안함 실종자 구조 과정에서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 유족, 연평해전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희생자 유족 등 20명이 참석했다. [연합]

이 사건은 검찰이 2010년 기소했지만, 국방부와 합조단 자료 확보 문제와 공판 절차에 대한 협의가 엇나가면서 재판이 지연됐다. 1심 재판부는 5년이 2015년에야 변론을 종결했고, 이듬해 2월 유죄 판단을 내렸다. 항소심 단계에서도 1심 선고 후 4년이 지난 2020년 10월 선고공판이 열렸다. 신씨의 변호는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변호사가 맡았다.

법원 판단에도 불구하고 신씨는 2020년 9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규명위)에 재조사를 요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의 이인람 당시 규명위원장은 진정인 자격도 없는 신씨의 진정을 수용해 논란을 빚었다. 천안함 유족은 지난해 5월 이 전 위원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으나 경찰은 13개월째 수사 중이고, 아직 이 전 위원장을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규명위 내부에서는 이 전 위원장 뿐만이 아니라 여권 성향의 상근직들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객관적 증거를 무시하고 재조사를 추진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규명위의 한 간부는 조사위원들이 작성한 서면 보고서가 자신의 판단과 맞지 않자 심하게 질책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씨의 주장이 규명위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전사자로 인정받던 천안함 순직자들은 단순 사고 사망자가 되는 상황이었다.


jyg9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