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 내 한 인쇄소 내에 선거공보물 제작에 쓰이는 잉크가 놓여 있다. 권제인 기자

또 어김없이 쏟아진다 [헤럴드경제=김상수·권제인·박혜원 기자] 선거 때가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선거공보물. 과도하게 종이가 낭비되기도 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또 하나의 폐해가 있다. 바로 공보물에 쓰이는 잉크다. 작업자에게는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대기에는 오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넘쳐나는 선거공보물 이면에 있는 부작용이다.

지난 12일 서울 충무로역 인근 인쇄골목엔 선거공보물 제작이 한창이었다. 골목 초입에서부터 화학약품 냄새가 진동했지만 정작 작업자들은 이를 잘 인지하지 못했다. 25년째 영업 중인 한 인쇄업체 관계자는 “이 정도는 심한 것도 아닌데”라며 “지금 잉크 냄새가 나느냐”고 되물었다.

업계에 따르면, 가로 20㎝·세로 25㎝ 크기의 양면 공보물 1만부를 인쇄하는 데엔 빨간색·노란색·파란색 잉크가 각각 2~5㎏ 필요하다. 공보물에는 사진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잉크 소비도 많다.

지난 12일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 내 한 인쇄소에서 선거공보물 제작에 잉크가 쓰이고 있다. 권제인 기자

잉크엔 알코올이 포함돼 있는데, 알코올이 증발하는 과정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Volatile Organic Compounds)이 발생한다. VOCs는 쉽게 증발하는 액체 또는 기체 유기화합물로 미세먼지와 오존 발생의 원인이 된다. 잉크는 색소와 접착 성분인 바인더로 나뉘는데 바인더에 VOCs가 포함돼 있다.

조영민 경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VOCs의 문제점을 실내와 실외로 나눠 볼 수 있다”며 “일부 발암물질이 실내작업 환경을 오염시키고 외부로 유출되면 오존을 발생시킨다”고 설명했다.

관련 규제가 있지만 선거공보물 제작 등에 널리 쓰이는 소규모 인쇄업체 등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은 대형 인쇄업체에 한해서만 VOCs 배출을 규제한다. 대기관리권역 내에 3000㎡ 이상의 인쇄업체가 들어설 때 신고를 의무화하고, VOCs 누출 농도를 1만ppm 이하로 유지토록 하는 등이다. 소규모 업체의 경우 이에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관련 방지설비를 구축할 때 비용을 지원하는 정도의 지원책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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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충무로 한 인쇄소에서 선거공보물을 제작하고 있다. 박혜원 기자

지난 3월 대선엔 총 4억부의 선거공보물이 쓰였다.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교육감 등을 모두 뽑는 지방선거는 이를 훨씬 웃돌 전망이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선 총 6억4650만부 공보물이 인쇄됐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환경오염 발생 등을 고려해 이젠 디지털선거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선거운동 활동기간 제약 등을 개선해 유권자와의 접점을 넓혀준다면 선거운동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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