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팽배되도록 자체정화 못해 화근
대기업과 공생 아닌 ‘진입 반대’ 급급
시장 독과점 빌미 스스로 내준 셈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꼴이죠.” “소비자들이 지금은 환호하는데, 나중엔 또 모르겠습니다.”
한 중고차매매업체 대표는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입 허용에 대해 씁쓸히 내뱉었다. 소비자들에게 불신의 대상이 된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드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중고차업계를 대표하는 양대 조직 중 하나인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차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강력 비판했다. 현대차가 뛰어들면 독과점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게 요지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에겐 신차값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우려되며, 기존 업계 30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평가다. 소비자들은 이미 기존 중고차 시장에 등을 돌린지 오래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의 지난해 설문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9.9%가 ‘중고차 시장이 혼탁하고 낙후돼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완성차업체의 시장 진입에 56.1%가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허위·미끼매물이 횡행하고, 소비자들은 가격산정 자체를 믿지 못한다. 주행거리·사고이력 조작, 판매 이후 피해보상이나 AS에 대한 불안 등도 불신의 이유다. 그야말로 레몬시장으로 방치돼 있었던 것.
이같은 혼탁은 시장 위축이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매매상사는 늘고 있지만 ‘딜러’라 불리는 종사원 수가 줄고 있는 것. 업계에 따르면 지난 4/4분기 기준 딜러 수는 3만581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줄었다. 중고차 거래가 387만대를 돌파한 지난해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로 들어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 안팎에선 이같은 현실을 스스로 정화하지 못한 데 대한 나비효과로 보고 있다. 업계는 늘 “일부 허위·불법딜러들이 시장을 망치고, 물을 흐리고 있다”고 말해 왔다. 또 “처벌수위가 너무 낮아 강력한 법적 제재를 통해 뿌리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 전에 이들을 솎아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소비자들은 업계에 되묻는다.
한 딜러는 “중고차 매매업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대기업 진출로 불안해진 미래 탓에 업계를 등지는 종사자들이 늘어났다. 일부 불법딜러들로 인해 직격탄을 맞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더라도 대리점이나 매물보관 부지 등 모든 인프라를 독자적으로 갖추기에는 비용부담이 만만찮다. 또 소매·온라인·위탁판매 등 비즈니스 영역에서 기존 업계와 협업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업계는 대기업 진입을 ‘제로섬 게임’으로 성급히 규정, 진입 자체를 막는데만 급급했다. 업계가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다.
대기업들이 인천, 용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자체 운영을 위한 중고차 매매단지 매입을 타진하고 있는 것은 업계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일부 매매단지가 대기업에 협업을 제의하고 있지만, 해당 대기업에선 반응이 없다. 결국 시장 독과점의 빌미를 업계 스스로가 내준 셈이 돼버렸다.
하재준 엠파크타워 발전위원장은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들어오면 각 권역별로 대리점을 내고 영업을 할텐데, 기존 매매상사나 딜러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결국 대기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대기업들도 소비자 이익만 내세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시장을 혁신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순전히 자본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수 만명의 기존 사업자의 생계가 위태로워지는 점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후 시장의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재훈 기자
igiza77@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