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규정 신설·징역상한형 개선 등 건의
인수위, 국정과제로 중처법 보완 가능성
‘규제개혁’을 약속한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단체들이 연달아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규제완화를 한목소리로 건의했다. 법 시행 이후 불명확성과 과도한 처벌 등이 재계의 주요한 ‘신발 속 돌멩이’로 꼽힌 만큼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보완이 검토될지 주목되고 있다.
▶징역 상한형, 손배규모 3배 이내로 완화 제안=1일 헤럴드경제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상의는 인수위에 전달한 정책제안서를 통해 재해 발생원인 등을 고려해 처벌규정을 개선하는 등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한상의는 현행 1년 이상 징역의 하한형 처벌 규정을 상한형의 징역으로 개선하고 법인에 대한 벌금 규모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또한 5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도 3배 이내로 제한이 요구된다고 전달했다.
책임의 주체를 안전보건 관리의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안전보건관리 총괄책임자로 한정, 지킬 수 있는 의무를 구체화해 명확한 의무를 부여하고 의무를 다했으면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사망자의 범위(현행 사망자 1명 발생) 역시 ‘1년 이내 2명 이상 발생’ 등으로 중대재해 정의를 합리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전경련 역시 인수위에 정책제안서를 전달하고 행위자 처벌만으로도 법 위반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면 법인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대재해처벌법 6조 1항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으로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경영책임자뿐 아니라 법인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총도 인수위에 전한 ‘신정부에 바라는 기업정책 제안서’를 통해 경영자에 대한 하한형 징역형 삭제 등 법률개정, 경영책임자 의무내용의 불명확성 해소 등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법 ‘자의적 판단’ 가능성 보완 필요, 尹 “자유로운 기업활동 방해요인 제거” 약속=재계가 인수위에 이같은 제안을 전달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불명확한 규정이 경영상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책임자등’과 같은 개념이나 ‘안전보건관리 확보조치’의 구체적 범위, ‘원하청간 책임 범위’ 등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모호한 부분 등으로 인해 법 집행기관이 의무 이행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법 위반이 과실의 성격임에도 고의범과 같은 ‘하한형’으로 규정해 과도한 처벌로 경영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고 처벌 수준이 주요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목소리다.
지난달 있었던 윤석열 당선인과 재계 6단체장 오찬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호소하는 단체장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도 현실에 맞게 수정하고 예방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했고 허창수 전경련 회장 역시 “안전은 중요하지만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중대재해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산업재해 취약부문 산재예방에 행정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번 인수위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도 지난 5년 간의 중요정책 평가, 산업재해 현황과 대응체계 점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현장 우려사항 청취 등이 이뤄진 만큼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해 보완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처벌에서 예방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설치 제안=재계 역시 단순히 규제 완화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상의와 경총은 기업 현장에서의 사고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청’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한상의는 처벌 중심이 아닌 예방 중심의 컨트롤타워인 산업안전보건청을 설치해 산업안전보건분야의 독립적 인사구조 확보를 통해 업무담당자의 전문성을 축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총도 산업안전정책 기조를 처벌 위주에서 예방중심으로 전환하고 선진국형 산재예방행정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조직법을 개정하고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논의는 중대재해처벌법 통과 직후 본격화됐으며 관련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한 기업인은 “최근 산업재해에 엄벌을 처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계속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며 “처벌이 아닌 산업안전 체계 전반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예방에 중점을 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문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