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리 토끼 잡는 ‘한미 전략핵동맹’
中 패권추구·日 군국주의·北 핵위협
민주주의 시장경제 만으론 전쟁 못막아
미·동맹국 ‘확전 우위 전략’으로 저지
한미, 전술 핵무기 전략적 공유 통해
‘지역균형자’ 한국 역할·비전 제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탈냉전 질서가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신냉전 시대가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각국의 셈 법이 복잡해졌다. 지난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미국이 자국 중심의 현실적 전략으로 바뀌는 신호로 읽혀졌다. 미국이 일정 부분 손을 놓을 경우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북·중·일 등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국은 역내 불안정성 속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씽크 탱커 이교관 한국국가대전략연구원장은 저서 ‘한국의 대전략’(김앤김북스)에서 향후 한국의 전략적 선택으로 한미 전략핵동맹을 제안한다. 한국과 미국이 전술 핵무기를 전략적으로 공유하는 전략핵동맹을 통해 중국의 패권 추구와 일본의 군국주의화, 북한의 핵위협을 함께 억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탈냉전 체제의 종언은 저자에 따르면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병합과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강대국의 야욕에 오바마의 미국은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이들의 노골적 도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배경에 미국의 전략, 즉 자유주의 패권전략의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30여년간 미국은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구사해왔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치·경제 체제를 갖추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이를 전 세계로 확산시킴으로써 완전한 승리, 패권을 영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이런 과욕이 중국과 러시아로 하여금 새로운 대안체제를 만들도록 추동하고 결국 탈냉전을 불러왔다는 게 저자의 문제인식이다.
저자는 대소 봉쇄 정책의 기획자였던 조지 F. 케넌의 지적을 상기시키는데, 케넌은 미국과 서유럽이나토를 동유럽으로 확대하면 러시아의 반격을 초래, 큰 위기가 발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키신저 역시 “미국이 탈냉전의 환상에 도취돼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궤도에서 이탈하도록 허용해 왔다”며, 완전한 승리주의가 무력충돌로 이어질 것을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을 지원하고 나토 가입을 지지하거나 IMF와 세계은행에 대한 중국의 지분 확대를 반대하는 것들이 오히려 반발을 키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이나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에선 미국과 동맹국들이 전쟁 회피 대신 확전 우위 전략을 통해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전쟁을 불사하는 각오로 단호히 대처할 수 있어야 위협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이 역외 균형으로 대전략을 전환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경제적 쇠퇴기조, 막대한 군사비, 부의 양극화 등 대내 문제로 미군 주둔을 대폭 감축하거나 철수하는 대신 위기 발발시 동맹국과 협력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장기적 대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동아시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거나 규모를 축소할 경우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역내 자유주의 질서 위협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 역시 미국의 빈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자국 중심의 역내 질서를 재구축하려 할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미국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역내 질서 전반을 관리하는 플랫폼으로서 한미 전략핵동맹을 제안한다.
그러려면 세계 3위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더욱 끌어올리는 게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중국과의 제한적 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저자는 내다본다.
무엇보다 중국은 역내 패권을 추구하면서 미국의 해군력을 제1도련선 밖으로 밀어내는 것을 핵심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내해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그 결과 이들이 중국 수중에 떨어지면 한국의 서해가 다음 차례가 된다. 한국은 중국과 서해의 배타적경제수역 경계선과 이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중이다. 중국이 한국의 서해 영유권을 침식해 들어오는 과정에서 중국과의 해상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군사대국화를 걷고 있는 일본에 대응전략도 요구된다. 저자는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가속화한 시점으로 2013년 미군의 시리아 사태에 대한 태도를 꼽는다. 당시 지상군 투입을 망설이는 걸 보고 미국이 머지 않아 역내에서 철수할 것으로 내다봤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략은 한국을 중국 진영으로 몰아내 미국과 더 돈독해지는 것이다. 미국의 신뢰를 업고 역내 패권을 잡겠다는 계산이다.
북핵 문제는 한국으로선 협상카드가 없다. 북한의 협상대상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 북한의 목적은 오로지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것이며, 핵협상은 단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전술일 뿐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중국으로선 북핵이 신경 쓰이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지 않는다. 미국에 대한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북·중·일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은 한미동맹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지역 안보를 책임지는 한미 전략핵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란 결론이다.
책은 수많은 전략가들의 분석과 제안, 철학자들의 통찰을 토대로 강대국의 패권 전쟁 속 한반도의 큰 그림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 특히 한국의 지역균형자로의 역할과 비전을 제시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패권 충돌의 시대 한국의 대전략/이교관 지음/김앤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