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중국 장쑤(江蘇)성에서 발생한 이른바 '쇠사슬녀 사건'이 중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베이징동계올림픽 기간 당국이 정보 확산을 통제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성 인권 침해, 인신매매, 정보 은폐 등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한꺼번에 들춰낸 이 사건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요원의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결국 당국은 23일 인신매매를 포함한 사건의 진상을 공개했다.
사건은 지난달 26일 중국의 한 블로거가 장쑤성 쉬저우(徐州)시 펑(豊)현의 한 판잣집에서 쇠사슬에 목이 묶여 있는 여성 양(楊)모(45) 씨를 촬영한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또 같은 블로거가 양씨 남편이 그녀와의 사이에 8명의 자녀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분노는 한층 더 확산했다. 사건에는 '8자녀 엄마 사건', '쇠사슬녀 사건' 등의 이름이 붙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이처럼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는 여성이 존재했다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여성이 비인도적 처사를 당하는 동안 공권력이 무엇을 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중국 농촌에서 결혼하지 못한 일부 남성이 인신매매를 통해 여성 인권을 유린하는 상황을 당국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던 문제가 이번에 제대로 불거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 확산했다.
결정적으로 현지 당국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지난달 28일부터 10일까지 4차례 걸쳐 발표한 정보가 오락가락했던 것이 불신을 키웠다.
일례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7일까지 현지 지방 정부 당국은 양씨에 대한 인신매매나 유괴가 없었다고 했다가 이달 10일에야 유괴 및 인신매매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싱가포르 매체 연합조보에 따르면 베이징대 학생 100명이 중앙 정부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공개 서신을 연명으로 발표했다. 아울러 지난 19일 칭화(淸華)대 법대 교수인 라오둥옌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 계정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그리고 여러 매체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현장에 갔지만 현지 당국이 방역 문제 등을 이유로 들며 취재를 막았다는 제보도 잇따랐다.
결국 수사에 착수한 현지 공안 당국은 지난 10일 양씨 남편 둥(董) 모 씨(55)를 불법 구금 혐의로, 양씨를 납치해 팔아 넘긴 쌍(桑)모 씨(48) 부부를 인신매매 혐의로 각각 체포함으로써 인신매매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어 장쑤성 당 위원회와 성 정부는 23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양씨가 1998년 3차례 걸쳐 인신매매를 당한 끝에 남편 둥씨와 함께 살게 됐다고 밝혔다. 쌍씨가 저지른 1차 인신매매때 양씨는 5천 위안(약 94만원)에 팔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양씨 남편 둥씨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20년까지 8명의 자녀를 출산한 양씨는 장남은 조산사의 도움으로, 둘째와 셋째는 보건소에서 각각 낳았지만 셋째부터는 집에서 분만했고, 둥씨가 탯줄을 직접 잘랐다고 한다.
양씨는 또 2017년부터 조현병 증세가 나타났을 때 남편 둥씨로부터 쇠사슬로 목이 묶이는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조사 당국은 전했다. 그리고 양씨의 출생 당시 본명은 샤오화메이(小花梅)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장쑤성 당국은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직무유기, 허위정보 발표 등을 이유로 펑현 당 위원회 서기 등 17명에게 면직, 직위 강등 등의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장쑤성의 조사결과 발표는 중국 중앙TV(CCTV) 메인 뉴스인 오후 7시(현지시간) 신원롄보(新聞聯播)에서 소개됐고, 포털 사이트 등에서 관련 검색어 여러 건이 주요 검색어 리스트에 올랐다.
중국 당국과 관영 매체들은 베이징올림픽 기간(4∼20일) 이 사건에 대해 쉬쉬하며 당국에 대한 비판 여론 확산을 통제하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야 진상을 발표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 매체 '중국부녀보'는 22일 '전국적으로 부녀자 유괴사건에 대한 명백한 조사를 건의한다'는 제목의 글을 싣고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