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퇴계 이황 종가의 설 차례상 모습.[한국국학진흥원 제공]
경북 안동 퇴계 이황 종가의 설 차례상 모습.[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헤럴드경제(안동)=김병진 기자]한국국학진흥원은 설 등 명절 때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고 전염병이 돌 때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도 했다는 기록이 옛 문서에 남아있다고 29일 밝혔다.

소장 일기자료 가운데 역병이 유행하는 탓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기가 있다.

경북 예천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가 쓴 ‘초간일기’의 1582년 2월 15일자에는 “역병이 번지기 시작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은 1798년 8월 14일 ‘하와일록’에는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적었다.

안동 풍산의 김두흠 역시 1851년 3월 5일 자신의 일기인 ‘일록’에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해 차례를 행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과거 집안에 상을 당하거나 환자가 생기는 등 나쁜 일이 생겼을 때는 차례는 물론 기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차례상은 간소하게 차린 것으로 나타났다. 제례문화의 지침서인 ‘주자가례’를 보면 설 차례 상에 술 한 잔,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 등 3가지 음식을 차렸고 술도 한 번만 올리며 축문도 읽지 않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소개했다.

즉 술·떡국·과일 한 쟁반을 기본으로 차리지만 나머지는 형편에 따라 일부를 추가하거나 빼도 예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가정의 설 차례상 모습.[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일반 가정의 설 차례상 모습.[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앞서 한국국학진흥원은 2017년부터 제례문화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서와 종가, 일반 가정의 설 차례상을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일반 가정의 차례 음식이 전통 예서 및 종가에 비해 평균 5~6배 가량 많은 수의 제수를 차례상 위에 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전통 격식을 지키는 종가의 설 차례상 역시 주자가례에 나타난 차례상 수준과 비슷하다고 했다.

경북 안동에 위치한 퇴계 이황 종가에서는 술, 떡국, 포,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 등 5가지 제수를 진설한다.

이황 종가에서는 과일 쟁반에 대추 3개, 밤 5개, 배 1개, 감 1개, 사과 1개, 귤 1개를 담는다. 주자가례에 비해 차가 생략된 대신 떡국과 전, 북어포가 추가된다.

하지만 일반 가정의 차례상에는 평균 25~30가지의 제수가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일은 종류별로 별도의 제기에 각각 담았으며 어류와 육류, 삼색 채소, 각종 유과 등이 추가됐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제례문화도 시대 변화와 환경에 따라 간소한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며 “요즘과 같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일상의 변화를 통해 차례의 예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bj765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