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애도하는 마음이 모여 나를 향한 공격의 화력이 되는 일은 광기에 가까웠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 김잔디(가명) 씨가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를 출간했다.

김씨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일은 너무나 힘겨웠다”며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심각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고 악몽을 되돌아봤다.

김씨는 책에서 박 시장을 고소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털어놨다. 2020년 4월 직원 회식자리에서 선배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김씨를 인근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한 사건이 시작이다. 이 일로 정신과 상담을 받다 지난 4년간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고통의 실체를 알게 됐지만 김씨는 차마 박 시장의 성추행을 의사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오랜 시간 지속된 박원순 시장의 성적 괴롭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성폭행 사건으로 곪아터진 것이었다. (…) 내가 입었던 피해에 대해 바로잡아야 죽는 순간에라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최선의 방법은 사법 절차뿐이라고 생각했고 고소를 결심했다.”

그런데 박 시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고, 김씨는 무너졌다. 죽음을 생각했고,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박 시장의 사망으로 그를 향한 사회적 폭력이 더해졌다. 그는 피해 당사자임에도 피해호소인으로 불렸다며,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는 게 부주의한 게 아니고 의도적이었다는 데 더 절망했다고 밝혔다.

김잔디란 저자 이름은 성폭력특례법상 피해자가 임의로 선택한 이름이다. 그는 성폭력 사건에서 어떻게 그동안 버티고 생존해왔는지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김씨는 구체적인 박 시장의 성추행을 나열하는 데, 세간에 알려진 무릎키스 사건을 비롯해 “내실에서 둘만 있을 때 소원을 들어 달라며 안아 달라고 부탁하고, 여자가 결혼을 하려면 섹스를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문자를 보냈고, 손톱 사진이나 잠옷 입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고 털어놨다.“나 별거해” “오늘 몸매 멋지더라” “내일 안마해줘” “오늘 안고 싶었어” 등의 역겨운 문자메시지가 계속됐다고도 했다.

저자는 피해 사실 외에도 시민운동가로 박 시장의 이미지와 다른 이야기들을 전한다.

그는 박 시장의 통풍약을 대신 받아오는 일을 했는데 본인 확인 등의 절차는 이뤄진 적이 없었다며, “시장님 딸이세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21일 연속 시장실에서 도시락을 차리고, 박 시장이 일회용품 사용을 싫어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일반식기에 옮겨담아 차려냈다며, 자신의 일이 밥 차리는 일이라는 데 자괴감이 컸다고 했다. 백화점에서 불고기, 김치, 나물, 햇반, 컵라면, 다과 등 시장 가족의 명절음식까지 챙겼다고 썼다.

김씨는 안희정 성폭력피해자 김지은 씨를 만난 이야기도 전했다.

저자는 여전히 악몽을 꾸지만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복귀해 소임을 다하고 있다며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 마음이라면 이제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글을 맺었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