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는 구성 자체가 일그러져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 추천 위원이 다수여서 이념에 따라 표결이 기우는 경우가 상당하다.”

지난 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 주최로 열린 ‘국민연금 대표소송 정책 토론회’에서 현재 수탁위 위원을 맡고 있는 정우용 상장협 정책부회장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 수탁위가 국민연금 대표소송에 대한 결정권까지 갖게 될 경우 기업활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수탁위 활동 자체가 목적이 돼 권한을 남용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올해부터 예정된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과 관련해 복지부는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기금운용본부에서 자문기구인 수탁위로 이관하는 활동 지침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정 부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수탁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며 이 같은 움직임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수탁위는 경영자 단체, 근로자 단체, 지역가입자 단체에서 추천한 각 3명씩 9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실상 자신을 추천해준 단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 부회장은 “수탁위 구조 자체가 이념 대립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로 수탁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경영자와 근로자 단체가 대립할 경우 지역가입자 추천인이 수탁위 결정에 ‘칼자루’를 쥘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어떤 경로로 지역가입자 추천 수탁위원을 선발하는 지를 비롯해 수탁위 회의록과 안건 등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이 복지부 장관인데다, 주요 4개부처 차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자신의 이념 등에 맞는 단체를 비공개로 선임해, 권력을 부여하고 기업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수탁위를 활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인 홍장표 전 수석이 작년 하반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으로 가세한 후 주주대표 소송 결정권을 수탁위로 넘기는 방안이 추진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 개입설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세계 주요 연기금 중 정부의 직접적 영향력 하에 있는 연기금은 국민연금이 유일한데, 여기에 더해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정부가 주관하는 위원회로 귀속시키는 것은 ‘정부의 상장기업 국영화’”라고 지적했다.

대표소송을 통한 이득이 없다는 점도 ‘정부의 기업 길들이기’ 주장에 힘을 싣는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승소할 경우 얻은 손해배상금은 기업의 일반 회계에 편입돼 국민연금이 직접적으로 얻는 이득이 없다”며 “반면 소송 자체로 기업은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주가가 하락해 기업과 연기금 모두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경제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복지부는 재계의 의견을 듣고, 2월 말 기금위에서 다시 논의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경제계의 각종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존 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악화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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