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 전시 논란
뱅크시 없고, 뱅크시도 모르는 전시
상업성, 오리지널리티 도마 위
논란 불구 관람객은 주말 최고 1000명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난달 국내 미술투자 플랫폼 테사에 올라온 뱅크시의 초기작 ‘러브 랫’이 오픈 1분 만에 완판됐다. 테사 오픈 이래 최단 시간이다. ‘러브 랫’은 영국 리버풀에서 발견된 벽화를 기반으로 한 뱅크시의 시그니처 작품이다. 150개의 서명 에디션과 600개의 미서명 에디션으로 제작됐다. 테사는 미서명 에디션 중 203번째 프린트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에 발행인의 스탬프와 에디션 넘버가 날인돼 있다.
이른바 ‘얼굴 없는 화가’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뱅크시는 국내 전시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름이다.
2016년 이스탄불에서 처음 시작, 전 세계 11개 도시에서 투어를 진행한 후 한국에 상륙한 ‘아트 오브 뱅크시:위드아웃 리미츠(The Art Of Banksy : Without Limits)’(2월 6일까지·더서울라이티움) 전시는 여러모로 화제다. 뱅크시의 세계관과 메시지를 담아 구성한 이 전시는 뱅크시의 원작 27점을 포함한 레플리카(재현작),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작품이 총 150여점 전시됐다. 테사에서 판매한 ‘러브 랫’과 같은 프린트 작품을 이 전시에서도 볼 수 있다.
개막 이후 전시는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소위 ‘뱅크시 없는 뱅크시 전시’, ‘뱅크시도 모르는 가짜 전시’라는 혹독한 꼬리표가 따라왔다. 일련의 논란으로 입방아에 올랐으나 전시엔 타격이 없다. 주말마다 40~50분을 대기해야 할 만큼 많은 관람객이 찾고 있으며, 추석이나 설 등 명절이 끼어있을 땐 성수동 일대가 북적인다. 주말에는 평균 500~600명, 최고 관람객은 1000명에 달한다는 것이 주최 측 설명이다.
전시에 따라붙은 논란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가짜 전시’ 논란이다. ‘논란의 불’을 붙인 것은 작가 자신이다. 전시가 한창이던 때에 뱅크시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잇따르는 ‘뱅크시 전시’는 작가와 협의 없이 조직됐음을 꼭 알았으면 한다”는 안내문을 게재하며 ‘페이크(FAKE)’ 딱지를 붙였다. 그러면서 라스베가스, 부다페스트, 파리, 리스본, 시드니, 암스테르담, 토론토, 베를린 등 전 세계에서 열리는 전시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흥미롭게도 ‘서울 전시’는 언급되지 않았다. 도리어 업계에선 “서울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는 것조차 모르냐”는 의견이 나온다.
‘논란의 핵심’은 ‘도덕적 가치’에서 비롯됐다. 미술계에선 이러한 전시가 뱅크시의 가치관과 순수성을 망친다고 본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뱅크시의 작품들이 꼬집는 정치, 사회적 메시지가 작가는 인정하지도 않는 상업적 전시로 인해 훼손된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뱅크시는 스스로 상업예술을 거부해왔는데, 상업 전시를 여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의견도 적잖다.
그러나 주최 측을 비롯해 뱅크시를 설명하는 전문가들은 “상업성 논란을 씌우기에는 뱅크시 스스로가 훌륭한 마케터”이자 “대형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경매 참여 등을 통해 이슈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아티스트”라고 반박한다. 모든 전시가 상업적인데, 뱅크시에게만 “순수성이라는 이름을 덧씌워 교조주의적으로 바라본 시각”이라는 의견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환선 BALC 대표는 “이 전시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는 다른 뱅크시 전시 역시 뱅크시가 직접 설립한 회사에서 공인한 전시”라고 강조했다. 전시에 걸린 작품들 역시 POW(뱅크시가 2003년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설립한 딜러) 인증 원작이 포함돼있다. 그러면서 “반전, 인권과 동물권, 자본주의 등 뱅크시의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 공감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전시”라며 “이러한 전시가 아니라면 뱅크시의 가치관을 깊이 만나기 어렵다”며 순수성을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뱅크시 없는 뱅크시 전시”라는 논란도 이어진다. 즉 ‘오리지널리티 논란’이다. 이러한 논란이 나온 것은 뱅크시의 작품이 주로 담벼락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뱅크시는 신원 미상의 작가다. 지금도 뱅크시의 존재에 대해선 추측만 무성하다. 그는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나타나 건물의 벽에 우리 사회를 풍자한 그림을 남긴 채 사라진다. 주최 측은 이러한 이유로 “담벼락을 떼올 수는 없진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이 전시는 전 세계에 흩어진 뱅크시의 작품을 한 데 모았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며 “작품 자체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목적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뱅크시의 원작수가 적은 데다, 원작이 아닌 작품으로 뱅크시의 철학을 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의견도 적잖다.
전시는 반전(反戰), 인권과 동물권, 자본주의 등 커다란 세 가지 주제를 두고 뱅크시의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기득권의 폭력과 무능을 조롱하거나 저항하는 작품들, 뱅크시만의 위트로 표현된 작품 등을 구성했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반전을 대표하는 작품 중 ‘풍선과 소녀(Girl & Balloon)’는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140만 달러(한화 약 16억5000만 원)에 낙찰된 후 파쇄된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시에선 이 작품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시 관계자는 “이 작품은 2014년 3월 시리아 내전 3주년 기념일에 시리아 난민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다”며 “뱅크시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뱅크시 전시를 향한 논란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뜨겁다. 이 대표는 “고흐,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레플리카 전시도 많았고, 다른 나라에서도 뱅크시 전시는 수도 없지만 한국과 같은 논란이 일었던 적은 없었다”며 “국내 첫 전시라는 높은 기대치가 논란으로 이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업성을 넘어 뱅크시의 가치관과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집중했다. 이 전시를 통해 뱅크시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