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양천구 빌라촌 일대 둘러보니…
한 빌라촌 공인중개사의 속내
아파트값 상승 풍선효과로 투자자 유입 늘어
가격 급등에…재개발 빠른 곳은 아파트 한채 값
불확실성 여전, 전문가들 “투자 시 심사숙고해야”
일부는 신축 빌라 난립 문제에 난개발 우려도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요새 젊은이들 빌라 투자가 많다던 데 솔직히 말리고 싶어요. 10년을 내다본다고 해도 막상 기다림이 힘들 겁니다. 주거환경도 워낙 열악하고…” (서울 양천구 신월동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조합은 착공까지 2년 걸린다고 하는데 3년이 걸릴지 4년이 걸릴지 아니면 그보다 더 걸릴지 아무도 몰라요. 요새 피(프리미엄)가 많이 붙는다던 데 지금이라도 털고 나가야 할지 고민이에요.” (은평구 불광5구역의 한 조합원)
서울 아파트값 급등 여파로 빌라(다세대·연립주택) 투자 붐이 일고 있지만 빌라시장 한 가운데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어떤 공인중개사는 투자를 만류했고 어떤 조합원은 집을 팔까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시의 적극적인 개발 움직임에도 정비사업이 언제 마무리될지 함흥차사라는 게 공통된 이유였다. 여기에 최근 빌라가격이 올라 기회비용, 분담금 등을 고려할 때 투자 이점이 있는지 확언하기 어려워졌다고 봤다.
지난 3일 찾은 은평구 불광동 일대 빌라촌 곳곳에는 사업시행인가를 축하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불광5구역은 조합 설립 약 11년 만인 지난 9월 은평구청으로부터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았다. 지하철 3호선 불광역 바로 앞에 있는 불광5구역은 재개발을 통해 지하 3층~지상 24층 32개동, 총 2387가구(임대 374가구) 규모의 아파트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재개발 순항 기대감이 커지면서 투자자의 발길도 늘었다고 현지 공인중개업계는 전했다. 최근 한달새 가격이 3000만~5000만원 가량 오르면서 감정가액 1억원대 후반~2억원대 초반인 매물에 웃돈이 최소 5억3000만원 이상 붙어있다고 했다. 7억~8억원 선이다. 전세금 2억원을 제외하고도 당장 5억원은 있어야 들어올 수 있는 셈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5억~6억원대에 손바뀜됐다는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가격 상승이다. 추후 조합원 분담금까지 감안하면 아파트 한 채 값을 고스란히 낸다고 해도 과언이다.
불광동 B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사업시행인가가 나면서 매수 문의가 늘어났는데 매물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가격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3~4년 뒤 입주할 새 아파트를 조금은 저렴하게 미리 산다는 생각에 접근하는 실수요가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업 진행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조합의 은광교회 제척(정비구역에서 제외) 결정을 두고 조합원 반대가 상당하고 일부는 조합장 해임까지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교회 소유의 토지를 제척하면 사업적 손실이 크다고 주장한다.
이날 거리에서 만난 60대 조합원 C씨는 “교회 부지를 빼면 분담금이 많이 늘어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라며 “차라리 재개발을 안 하는 게 나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전했다.
빌라 매수세는 사업 초기 단계이거나 아직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으로도 대거 유입되고 있다. 이날 양천구 신월동 인근에서 빌라를 주로 취급하는 공인중개업소를 둘러보니 개발 가능성이 아직 낮은 곳에서조차 매수 문의가 줄잇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매물마다 제각각이지만 시세가 두세 달 새 전반적으로 2000만~3000만원 정도는 올랐다고 했다.
신월7동 D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대지지분이 10평 남짓인 빌라가 올해 초엔 2억원대에도 거래가 됐는데 지금은 대부분 3억원대 초중반”이라며 “재개발까지 갈 길은 멀지만 저렴한 가격에 앞으로 투자가치가 있다고 보고 매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초기 재개발 지역은 불확실성이 크다. 개발 시기를 가늠할 수 없어 10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 자금이 묶일 수 있다. 물론 재개발 추진 단계에 따라 차익 실현도 가능하지만 감가상각이 빠른 편이라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실거주할 경우 수도관 등의 건물 노후와 심각한 주차난, 화재·범죄 등 안전에 취약한 주거 환경을 견뎌야 하는 문제도 있다.
실제 현장에선 빌라 투자 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발 기대감만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재개발 사업은 부침이 심한 편이라 수년간 추진되다가도 조합원 간 내홍 등으로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신월3동 E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동의율이 아직 30% 수준에 불과하고 여러 여건상 당장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신월3동은 과거 정비예정구역이었으나 사업이 진척되지 않아 지난 2017년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바 있다. 최근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후보지 공모에 지원하며 개발 재추진에 나섰다.
재개발이 늦어지는 일부 지역에선 신축 빌라 난립 문제도 제기된다. 도로나 주차장 등 기반시설이 확충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것은 주거 환경을 되레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정부가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 등 단기간 공급할 수 있는 비아파트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데 대해 업계가 우려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택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아파트까지 포함해 공급을 늘리려는 정책기조는 높게 평가할 수 있지만 난개발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