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이용시 불편함, 설계사가 만든 것

장애인 고려하지 않아 생긴 ‘일종의 사고’

장애인의 웹·모바일 접근성 향상에 중점

개인화 맞춤 서비스가 문제해결의 열쇠

시각장애인도 볼 수 있는 디자인...“IT 기술이 해결사죠” [헤럴드디자인포럼 2021]

“서비스를 이용할 때 느끼는 장애는 설계사가 만드는 장애입니다. 장애인을 이용자로 고려하지 않아서 장애인에게만 나타나는 일종의 사고죠. 장애인들이 이를 경험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오는 14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2021’에 연사로 나서는 김혜일 ㈜링키지랩 접근성팀장은 사용자의 경험을 설계하는 데까지 디자인의 영역이 확장된 상황에서 서비스를 디자인할 때 장애인을 포함해 이용자 범위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링키지랩은 카카오가 지난 2016년 설립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이다. ‘모두를 연결하라(Lingkage all us)’를 모토로 장애인들이 웹이나 모바일 환경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접근성’은 일반적으로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 기기 등을 많은 이용자가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정도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누군가에게는 편리하고 불편한지의 척도일 수 있으나 장애인들에게 접근성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벌어진다.

디자인 역시 장애인들에게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다가간다. 김혜일 팀장은 시각 장애가 있다. 그는 중학생 시절 급격히 시력이 안 좋아진 뒤 아예 시력을 잃기도 했다. 두 차례 수술을 거쳐 지난 2015년부터 저시력을 유지하고 있다.

“비장애인일 때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디자인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예쁘고 멋있으면 그 이상 바라지 않았다”며 “저시력 상황이 되고 나니 예쁜 것보단 일단 잘 보이는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안보이는데 예쁘고 말고가 없는거죠.”

처음 시력을 잃었을 때 혼자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던 김 팀장은 시력이 다소 좋아졌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당시의 경험을 떠올려 접근성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그는 “장애인 혼자 조작할 수 있어야 접근성이 좋은 환경”이라고 말한다.

가령 시각장애인에게 좋은 앱은 작동시켰을 때 어떤 정보들이 표현되고 조작할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구성돼 있는지 금세 파악될 수 있어야 한다. 청각장애인에겐 음성으로만 설명되는 동영상 정보는 접근이 어렵다. 지체장애인은 손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배치, 레이아웃 등 디자인에는 콘텐츠의 구조와 포함관계 등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볼 수 없어도 기획자가 만든 논리, 기획의도가 이용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디자인의 역할이다.

시각장애인도 볼 수 있는 디자인...“IT 기술이 해결사죠” [헤럴드디자인포럼 2021]
시각장애인도 볼 수 있는 디자인...“IT 기술이 해결사죠” [헤럴드디자인포럼 2021]
김혜일 ㈜링키지랩 접근성팀장은 “좋은 디자인이란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용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히 IT는 안 보이는 사람이 볼 수 있게, 안 들리는 사람이 들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신(神)급의 능력을 발휘해 장애인 접근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제는 정보통신기술(IT)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김 팀장의 지론이다. 그는 “장애인은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지만 IT로 이를 해결할 수 있으며 심지어 접근성을 높이는 게 어렵지도 않다”며 “안 보이는 사람이 볼 수 있게, 안 들리는 사람이 들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신급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역설했다.

장애인에게 접근성이 좋은 콘텐츠는 비장애인에게도 접근하기 좋다. 김 팀장은 카카오톡의 고대비테마(다크모드)를 예로 들었다. 화면을 검게 글자를 하얗게 해 눈의 피로도를 줄여주는 다크모드는 현재 대부분의 휴대폰에 기본 기능이지만 몇해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카카오톡은 저시력 장애인들을 위해 고대비테마(다크모드)를 제공했다.

그는 “플레이스토어에 달린 후기들을 보면 부모님 카카오톡에 다크모드를 적용해드렸더니 좋아하신다거나 눈이 편해서 애용하고 있다는 등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많다”며 “장애인의 이익과 비장애인의 이익이 배치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겠냐”고 했다.

IT기술로 장애인 접근성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장애인이 혼자서 무언가를 하기는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다. 김 팀장은 “어떤 시각장애인이 모바일 쇼핑몰에서 필요한 물건을 골라 장바구니에 다 담았는데 결제를 하지 못해 집 근처 편의점으로 가 점원에게 부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장애인들은 안타까워할 수 있지만 저희끼리는 ‘그래도 장바구니에 담는거까지는 성공했구나’며 안타깝지만 지금 이정도가 그나마 나아진 접근성의 현위치를 보여주는 재밌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은 이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김 팀장은 “일부 혼자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근로지원인이나 동료의 도움을 받다가 집에서 장애인 혼자 스스로 처리해야할 때 암담해진다”며 “결국 아이디나 비밀번호 등 개인 정보를 알려주고 부탁할 수 밖에 없는데 보안상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화가 심해지고 4차혁명으로 나아가는 현재 김혜일 팀장이 추구하는 접근성은 더욱 확장성이 커졌다. 이는 필연적으로 개인화로 이어진다. 그는 “개인화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며 “장애인만 그런 게 아니라 맞춤형 서비스가 대세”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의 꿈은 복합쇼핑몰과 같이 넓은 공간에 들어섰을 때 장애가 있는 이용자를 인식해 그에 맞는 형태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장애인이 있는 정류장 정보를 인식해 소리를 내면서 다가오는 버스 등 ‘스마트 시티’로 이어진다.

세계적으로는 접근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업체들은 접근성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비스 설계 초기 디자인부터 접근성을 고려하고, 접근성에 대한 일정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출시 자체를 할 수 없는 식이다. 김 팀장은 아직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이 장애인을 인식하고 적절한 정보와 도움을 제공할 만큼 데이터가 쌓여있지 않다며, 접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더욱 커지길 기대했다. 주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