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시대’ 디자인의 역할 질문에

모든 것에 ‘새 디자인’ 필요한 순간

지속가능한 미래 디자인 위해서는

정부 방침·소비자 인식 노력 필요

“모든 게 변했다...팬데믹은 새 어젠다 추진할 엄청난 기회” [헤럴드디자인포럼 2021]

“우리 모두가 코로나19의 영향을 직접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 속 희망은 분명히 있고, 그것은 새로운 어젠다들을 추진할 엄청난 기회이기도 하죠. 이 순간 디자이너로 활동한다는 것은 두렵기도 하지만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젊은 디자이너 벤자민 휴버트(37)는 코로나 팬데믹을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11년 전 설립한 레이어(Layer) 스튜디오를 이끌며 나이키, 펩시, BMW, 삼성, 브라운 등 세계 유수의 브랜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등 권위있는 디자인 상을 다수 수상한 그를 지난 24일 구글 미트(Google Meet)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다음달 14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21 연사로 나서는 그는 인터뷰에서 ‘펜데믹 시대 디자이너의 역할’, ‘디자이너의 덕목 훈련’, ‘젊은 리더로서의 솔루션’ 등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1시간 동안 거침없이 털어놨다.

휴버트는 먼저 “모든 것이 변했다”며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로운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뉴노멀(New normal)’은 지난 수십 년에 비해 훨씬 더 실질적인 방식으로 디자이너들이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디자인’은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디에 두고, 어떻게 청소하는지 등의 가장 기본적인 변화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모든 변화를 뜻한다”며 “세상을 더 많은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채울 수도 있겠지만, 반면 훨씬 더 좋은 물건과 제품들로 채울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전 지구적 화두인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디자인의 역할과 관련해선 “진정한 변화는 디자이너들의 윤리와 역할, 책임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비자와 기업들은 통상 유용성, 비용 등을 따진 뒤 마지막에서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휴버트는 “가장 중요한 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공장이나 브랜드에 대해 세금, 벌금을 부과하는 등정부 방침이 서야 하고 소비자들이 환경문제와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에 대한 지식을 계속 늘려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게 변했다...팬데믹은 새 어젠다 추진할 엄청난 기회” [헤럴드디자인포럼 2021]
벤자민 휴버트가 디자인한 기부금 모금함 ‘체인지 박스(Change Box)’. 영국 암 환자를 돕는 자선단체 매기스(Maggie’s)는 이 모금함을 통해 같은 기간 기존 대비 83% 더 많은 돈을 모금하는데 성공했다.
“모든 게 변했다...팬데믹은 새 어젠다 추진할 엄청난 기회” [헤럴드디자인포럼 2021]
Joyn-자율주행 차량 내 모듈식 좌석 분할 시스템

그 밖에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자질에 대해서도 휴버트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당신은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전체 프로젝트의 20% 가량을 비영리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 역시 부유한 배경을 갖고 있지 않은 만큼, 윤리만을 추구하면서 일을 추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본 적은 없다. 다만 우리는 상업적인 디자인과 책임 있는 디자인 윤리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상호 배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을 결합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더 강력하고 오래 갈 수 있다.

- 디자이너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문제를 찾아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가진 듯하다. 어떤 덕목을 훈련해야 하나.

▶직관력, 감의 문제다. 관찰력, 통찰력, 경청하는 방법 모두 훈련으로 키울 수 있다. 방 안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 본인의 주장을 항상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보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지고, 거기에 맞는 몇 가지 훌륭한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객사(클라이언트)와의 관계는 어떻게 맺나.

▶그들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그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도록 신뢰, 믿음을 쌓아야 한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사이 전통적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클라이언트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파트너라고 부른다.

-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일 자체를 즐긴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워라밸(Work&Life Balance)’ 이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수년에 걸쳐 많은 한국 기업들과 일해왔기 때문에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를 잘 알고 있고 그들의 업무에 대한 헌신을 매우 존경한다. 단, MZ세대 직원들로 넘어가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디자인이라는 일은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과정이 최종 결과 만큼 혹은 그보다 더 가치 있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술에 대해 배우고, 그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었던 것들이 얼마나 행운이었나. 이런 여정 자체가 가치있게 여겨지면 모든 게 더 즐겁고, 재미있고, 압박이 덜해진다. 배두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