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운명(카일 하퍼 지음,부희령 옮김, 더봄)=서기 400년 로마에는 28개의 도서관과 856개의 대중목욕탕, 4만 7000개의 아파트 블록, 70만 명 이상이 거주한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만에 제국은 무너졌고 인구는 2만으로 줄었다. 거대 로마제국이 몰락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사회구조와 정치현상 등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카일 하퍼 오클라호마대 교수는 많은 학자들이 주장해온, 인간의 행위에서 원인을 찾는 데서 시야를 확장, 자연환경, 즉 기후변화와 생태계를 제국 멸망의 결정적 변수로 든다. 로마인들은 자연이라는 야생의 힘을 길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간의 야심에 대한 자연의 승리였다는 것이다. 과학적 도구를 통해 알려진 로마제국은 홀로세라 불리는 역사적 기후 시대의 특정한 순간, 지중해 지역에 지어진 제국이었다. 급격한 기후변화가 지연되던 시기였다. 특히 열대의 변두리까지 뻗어나가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예측하지 못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진화의 잠재력을 분출하기 쉬운 질병 생태계를 만들었다. 여기에 화산 폭발과 태양 주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저자는 생물학과 병리학, 기후학에 이르는 방대한 데이터와 검증을 통해 로마가 생태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 살펴나간다. 인간의 행동과 시스템, 병원균과 기후변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책은 현재를 읽는데도 유효하다.
▶우리는 실내형 인간(에밀리 앤시스 지음, 김승진 옮김, 마티)=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구의 배치를 바꾸거나 벽의 색깔을 바꿈으로써 기분전환과 능률을 꾀할 수 있다면 반길 일이다. 그런데 건강에는 어떨까? 실내공간 개척에 힘쓰고 있는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친밀한 공간인 집을 비롯, 감옥, 병원 등 색다른 공간의 탐험에 나선다. 저자가 보고한 실내환경을 보면, 집안은 온갖 박테리아의 온상이다.먼지 샘플에서 박테리아 11만종, 균류 6만3000종의 DNA가 나왔다. 실외보다 실내에서 미생물이 더 다양했다. 벽과 식품, 식물, 반려견, 에어컨, 식기 세척기, 샤워기 등 모든 곳에서 박테리아가 나왔다. 그러나 어떤 게 좋은 박테리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집을 건강에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실내를 건조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항균 화합물로 집을 도배하면 좋은 미생물까지 죽일 수 있다. 공기청정제나 유용한 박테리아를 뿌려준다는 스프레이에 현혹되지 말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병원의 경우 침대 배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병원 내 질병 확산과 사망률이 크게 감소하기도 한다. 소음을 흡수하는 재질로 바꾸면 환자와 간호사들의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넛지형 공간설계도 주목할 만하다. 보행자 도로를 넓히거나 근사하게 조성하면 사람들은 더 자주 걷게 된다. 강박이나 편두통, 자폐 등 신경장애를 배려한 실내 공간 디자인등 공간 활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예가 눈길을 끈다.
▶밝은 밤(최은영 지음, 문학동네)=베스트셀러 ‘쇼코의 미소’의 작가, 최은영이 돌아왔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 따뜻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2020년 봄부터 겨울까지 일 년 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작품이다. 소설은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어온 증조모로부터 현재의 ‘나’까지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삶을 그린다. 서른두 살의 지연은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희령으로 떠난다.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 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지연은 희령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보고 도망치다시피 이사를 결심했다. 바닷가의 작은 도시 희령은 열 살 때 할머니 집에 놀러가기 위해 방문했던 떄를 빼면 가본 적이 없다. 그곳에서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주말, 지연은 언덕에서 한 할머니를 만난다. 지연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가끔 마주친 할머니다. 노인은 바람부는 언덕에서 뜻밖의 말을 꺼낸다. 자신의 손녀랑 닯았다며, 이름이 지연이라고 말한다. 할머니 딸의 이름 역시 지연의 엄마 이름과 같다. 이십여년 간 만나지 못한 할머니와 엄마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소설은 희령의 현재 시점과 할머니에게 전해듣는 과거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하면 전개된다. 1930년대 백정의 딸로 태어난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로부터 현재의 지연까지 100년의 이야기를 지연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죽은 인물들, 잊혀진 인물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