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창신동 ‘열섬’ 현장 가보니

낮 36도 육박…공원·골목으로 피신

세면시설 10명이 이용 환경 열악

쉼터, 백신 2회 다 맞아야 이용 가능

매주 서울역 가서 코로나19 검사

“한두 시간 서있다간 다 쓰러질 판”

[르포] “바람 없고 벽 열기로 생지옥”…쪽방촌 ‘폭염에 질식’ 위기
[르포] “바람 없고 벽 열기로 생지옥”…쪽방촌 ‘폭염에 질식’ 위기
[르포] “바람 없고 벽 열기로 생지옥”…쪽방촌 ‘폭염에 질식’ 위기
21일 서울 낮기온이 최고 35.3도를 기록한 가운데 오후 3시께 동대문구 창신동 쪽방촌의 한 골목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길거리로 나와 쉬고 있다(위). 같은 날 오후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촌에 열 명 안팎의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공용 세면공간(가운데)과 쪽방촌 3층의 모습. 창문이 나 있으나 바로 앞에 벽이 있다. 주민 신모(67) 씨는 “창문 앞이 벽이지만 바람이 들어오는 편이고 서큘레이터와 선풍기 등을 받아 상황이 낫다”고 했다. 김희량·김영철 수습기자

낮 기온이 36도에 육박한 지난 21일 오후 3시께 서울 용산구 동자동.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나는 날씨에도 쪽방촌 주민들은 인근 새꿈어린이공원에 나와 있었다.

뜨거운 뙤약볕에도 쪽방촌 주민들이 밖으로 나오는 건 집 내부가 더 더운 탓이다. 쪽방촌 곳곳에서 방문을 열어두거나 방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 문을 줄로 고정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러닝셔츠만 입거나 아예 상의를 벗은 주민이 대다수였다.

동자동에서 54년 동안 살고 있는 주민 이모(78) 씨는 공원에 마련된 천막 아래에 앉아 “아침 8시30분부터 나와 있는데 여기가 명당”이라며 “이렇게 더운 날이 없었는데 올해는 정말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이 사는 건물을 가리키며 “종일 해가 있고 밤에는 뜨거운 바람이 불어서 한증막이 따로 없다”며 “밤이 더 무서워, 열대야잖아. 바람 안 불고 벽의 열기가 있어서 생지옥”이라고 했다.

같은 쪽방촌에 살더라도 창문이나 층수 등 미세한 주거환경 차이에 따라 이들이 체감하는 더위는 크게 다르다고 했다. 주민 신모(67) 씨는 “창문이 있는 3층이라 상황이 낫지만 (월세가) 2만원 더 싼 지하는 창문이 없어서 더 힘들다”며 “창문 앞이 벽이지만 바람이 들어오는 편이고 선풍기 등을 받아 상황이 낫다”고 했다.

신씨 옆방에서는 마침 같은 건물 지하에 사는 이웃이 올라와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이들은 “소나기라도 오면 좋을 텐데 내일은 더 덥냐”고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같은 시간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쪽방촌 골목에도 더위를 피해 집 밖에 나온 주민들로 넘쳐났다. 주민들은 냉기를 느끼려 건물 복도 바닥에 앉아 있거나 연거푸 손부채질을 했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여름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이 인사가 됐다. 세 갈래로 나뉜 골목길에서 마주친 주민 6명은 한데 모여 앉아 “겨울이 오면 좋겠다” “아니, 가을이 오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문을 열어둔 채 상의를 벗고 있기도 했다.

인근 여인숙에 거주한다는 A씨는 “방에 모기가 들어오지 않게 모기망을 친 걸 제외하곤 현관문과 건물 대문 모두 열어놓고 산다”며 “방 내부가 바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워 밤에 문을 열지 않으면 잘 수가 없다”고 했다.

계속되는 폭염에 지방자차체와 시민단체도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 챙기기에 나선 모습이었다. 동자동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는 천막을 펴고 더위를 피해 나온 주민들에게 시원한 생수를 나눠줬다. 나오지 않은 주민들을 위해 건물 계단참에 생수를 쌓아두기도 했다.

창신동에서도 서울사회서비스원 직원이 나와 주민들에게 물과 빵 등 물품을 건네고 있었다. 서비스원 관계자는 “집 계단폭이 성인 남성 허리춤만큼 좁아 발 뒤꿈치를 든 채 올라가야 할 정도”라며 “이렇게 더운 날씨에 주민들이 다닥다닥 붙은 방에 있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역대급 폭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지자체 등에서 마련한 쉼터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워졌다고 쪽방촌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에어컨이 있는 쉼터나 공용 샤워시설 등을 이용하려면 1주 이내 음성확인서를 증빙하거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동자동에서 만난 이모(74) 씨는 “26일에 2차 접종을 하는데 그러고도 2주 지나야 쉼터에 들어갈 수 있다더라”며 “그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역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야야 하는데 차례를 기다리려고 한두 시간 서 있다가는 늙은이들 다 쓰러지진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백신 다 맞고 나면 더운 여름은 다 지나고 (쉼터에) 가장 더울 때 못 들어가는 거잖냐”며 “이 더운 날에 콧구멍을 몇 번을 쑤셔야 되느냐”고 반문했다.

개별 세면공간이 딸려 있지 않은 쪽방촌 특성상 주민들은 한 층에 하나씩 마련된 공용 세면공간을 10여명이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쪽방촌상담소 관계자는 “쪽방의 공용 세면장은 말 그대로 세면 정도 가능한 수준이라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주소현 기자·김희량·김영철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