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지 사는 이유가 뭔데…”
집주인 실거주 엄포에 물러설 수 밖에 없어
이사비용·중개수수료 생각하면 이사가 손해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2년+2년 계약갱신권, 5% 인상제한이 세입자 주거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제 경우엔 전혀 아닙니다. 집주인이 실거주 들어오겠다는 한 마디에 벌벌 떨고 있어요. 아이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기 때문에 5%가 아니라 그냥 현재 시세대로 맞추고 재계약하기로 했습니다.”(송파구 소재 아파트 세입자 A씨)
자녀 학교 배정이 주거지 선택의 큰 이유를 차지하는 가구는 집주인이 실거주 들어오겠다는 말처럼 무서운 게 없다.
이미 2년 전 계약 당시보다 두 배 가까이 전세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집주인은 5%인상하는 계약갱신을 거부하면서 본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식으로 퇴거를 종용하는 식이다.
A씨는 “문제는 주변 인근 단지로 이사가도 결국은 몇 억 원에 달하는 전세보증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것은 똑같고, 여기에 이사비용과 중개수수료까지 추가로 생긴다”면서 “바로 옆 강동구로 이사를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면 중학생 아이를 전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배정을 앞두고 있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집도 사정은 비슷하다.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B씨는 이 집에 이사올 때 어느 중학교로 배정받는 지를 꼼꼼히 따져서 결정했다.
B씨는 “사실 이 동네에 전월세로 사는 이유는 학군 때문이지 않나”라면서 “아파트 단지, 동에 따라서도 배정받는 중학교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사를 함부로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집주인이 실제로 살 생각은 없는데 일단 퇴거시키고 새로 세입자를 받고싶은 눈치라 이번에 시세대로 맞추고 다음 번에 갱신권을 쓰는 쪽으로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 바뀐 임대차보호법은 전반적으로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시켰지만 당장의 2년 시한부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집주인의 유일한 권리보호 수단인 ‘실거주 사유’가 상당한 효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서초구 한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던 C씨는 집주인의 실거주 통보로 집을 비워주고 도보 10분 거리의 다른 단지로 이사를 했다. 이 때문에 초등학생 자녀를 아침 통학시 마다 데려다주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C씨는 “집주인이 본인 아들 내외가 들어와 살 것이라고 했는데 빈집 상태로 계속 두고 있는 걸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시간과 비용,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소송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부 설명자료에 따르면 집주인이 허위로 갱신 거절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위반에 따른 민법 제 750조 일반불법행위로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
다만 서울시와 각 자치구 차원에서 집주인이 전입신고만 해두고 실제 기거하지 않는 빈집 상태임을 확인해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소명자료 준비부터 소송을 걸어 입증하는 것 모두 임차인이 직접해야 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