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에 이어 시멘트도 부족 현상
몇몇 공공공사 현장은 공사중단 사태도
민간건설사 아파트도 비상…웃돈주고 물량확보 전쟁
[헤럴드경제=최정호·민상식·양영경·김은희 기자] “철근도 철근인데, 이제는 시멘트도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최근 원자재난에 시달리고 있는 한 건설업체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2배 넘게 준다고 해도 구하기 어려운 ‘철근 대란’이 시멘트로까지 번질 기세에, 이제는 약속한 준공일을 연기하는 것까지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건설 현장에 ‘원자재난’이 심각하다. 시작은 철근이다. 코로나19 여파를 간신히 벗어났다 했더니 올해 초부터는 철근이 없어 손을 놓은 공사 현장이 수두룩하다. 대한건설협회가 지난 3월과 4월에 자재 수급 불안으로 공사가 중단됐거나 공정이 지연된 현장 상황을 조사한 결과, 모두 59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최근에는 시멘트까지 부족해지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단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철근과 레미콘”이라며 “레미콘은 조만간 가격인상이 불가피해 보여, 공사 현장을 묶어 통합 발주하는 비상수단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로 인한 건설 중단일 수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대구에서는 도시철도 2호선 죽전역 출입구 완공이 4개월 연기됐다. 철근을 구하지 못해 애초 5월 말 문을 열었어야 했던 지하철 출구가 오는 9월에나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구시는 지난 1월 죽전역 출입구 공사에 쓸 철근을 조달청에 구매 의뢰했지만 통상 1~2주 걸리던 납품이 3월에서야 이뤄지며 생긴 일이다.
또 계약 공사금액만 1500억원이 넘는 한 민간 공사 현장에서는 SD300 규격 철근을 구하지 못해 무려 45일의 공기 지연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장마철 전에 완성해야 하는 침수예방공사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부산 강서구청은 ‘서낙동강 스마트 홍수관리 시스템 구축’ 작업에 나섰지만 철근을 구하지 못해 토목공사를 이달 2일까지 일시 정지해야만 했다. 그나마 전기나 통신선로공사를 대신 앞당겨 시행하고 있지만 공기를 맞추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건설협회가 자재 수급 불안으로 공사를 하지 못한 59곳 현장의 공사 지연 일수를 조사한 결과, 민간공사 현장 29곳에서 평균 18.5일, 대구도시철도 같은 공공건설 현장 30곳에서 평균 22.9일의 지연이 발생했다. ‘시간=돈’인 공사 현장에서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자재 부족에 따른 공사 지연은 최근 불붙기 시작한 주택 공급에까지 차질을 주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철재가 주로 사용되는 것은 공사 초기”라며 “상반기 분양이 많았던 업체를 중심으로 속앓이가 심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무작정 공사를 중단하면 준공 및 입주 지연까지 발생할 수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웃돈을 주고서라도 자재를 조달하는 형편”이라며 “궁여지책으로 1만원에 사던 자재를 2만원씩 주고 사다 보니 수익성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철근과 시멘트 등 자재 조달 경로가 다양한 대형 건설사도 속앓이를 하긴 마찬가지다. 국내 굴지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대형 회사들은 그나마 당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진 않지만 이런 상황이 3~4개월 후까지 계속된다면 중국산을 수입해 끌어 쓰는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공사 현장은 적자를 걱정하기도 했다. 관급공사를 진행 중인 한 관계자는 “원가가 워낙 증가해 공사비를 더 받아야 하는데 정부가 그렇게 해줄 것 같지는 않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해 건설업체들과 협회는 자재 수급 불안에 따른 공사 지연 시 지체상금 부과에서 제외토록 제도 개정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건설업체의 피해는 물론, 아파트 입주 지연 및 시설물의 품질 저하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어 수급 불안 해소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며 “하지만 아직도 일부 발주처에서는 관급 자재 조달에 실패하고도 공사기간을 연장해주지 않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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