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김주임도 블라인드 해? 아니 뭐, 글 쓰는 거야 자유인데… 거기에 글 쓰는 애들은 다 나쁘게만 쓰잖아? 회사가 원래 그런 건데. 웬만하면 깔지 말고 있으면 삭제해.”
공공기관에 근무 중인 A씨(29)는 상사의 블라인드 ‘단속령’에 시달리고 있다. 가뜩이나 심했던 블라인드 검열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땅 투기 의혹 사건 이후 더욱 심해졌다. 이전에는 블라인드에 회사에 관련된 부정적인 이야기가 올라올 때 묻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식사 자리는 물론 지나가던 직원에게까지 시도 때도 없이 “혹시 너도?”하며 묻는다는 것.
A씨는 “가끔 전체 메시지가 돌고는 했는데, 요즘에는 한명씩 단속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상사는 물론 지역 본부 차원에서도 블라인드 글을 예의 주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블라인드 앱이 깔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배신자’ 낙인을 찍으니, 혹시라도 걸릴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꼬우면 이직해”…블라인드가 뭐길래?
LH의 땅 투기 의혹의 불똥이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어플리케이션(앱)으로 튀고 있다.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작성자가 “꼬우면 이직하라”는 글을 올려 국민적 공분을 샀기 때문. 경찰이 지난 17일 작성자를 찾기 위해 경찰이 ‘팀블라인드’ 한국지사 압수수색에 나섰다가, 주소를 잘못 특정해 ‘허탕’을 치기도 했다. 앞서 카카오와 KBS도 블라인드 글이 화제가 되면서 곤혹을 겪었다. 이에 공기업, 공공기관은 물론 사기업에까지 암묵적인 ‘블라인드 금지령’이 내려졌다.
최근 블라인드로 논란이 일었던 한 기업에 근무 중인 B씨(50대)는 “부서 전체가 있는 메신저방에서 간부가 블라인드 관련해 한 마디 했다”며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 진짜 직원인지 알 수 없지만 악의적으로 음해를 하니 조심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블라인드는 ‘익명’을 핵심으로 하는 커뮤니티다. 블라인드 가입을 위해서는 소속 회사의 이메일 계정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블라인드는 이후 곧바로 암호화 처리한다. 소속 회사는 물론 동종 업계 사람들과도 소통이 가능하다. 블라인드 앱은 지난달 말 기준 국내 320만명, 미국에서 120만명의 회원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장인 대나무숲” vs “과대대표 경계”
블라인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A씨는 “직장 생활의 고충을 나누고 회사의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는 블라인드 글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데만 급급하다”며 “불만의 원인을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블라인드는 ‘직장인의 대나무숲’으로 불린다. 회사에 대한 과감한 평가는 물론 때로는 ‘내부 고발’까지 이루어진다. 블라인드가 유명해진 것도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2014년 블라인드에 당시 상황이 올라오고 외부에 알려지면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지난달 카카오의 ‘인사평가 논란’도 블라인드가 시발점이 됐다. 카카오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회사 내 따돌림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이후 카카오의 인사 평가 항목에 “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가”에 대한 조사 결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카카오는 평가 제도와 보상 등 인사 전반 문제를 논의하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킨다.
일부의 의견이 전체의 의견으로 확대 해석되는 ‘과대 대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퇴사한 후에도 게시글 작성이 가능해 신뢰도가 낮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B씨는 “블라인드의 게시글의 상당수는 정제된 내부 고발보다는 경솔한 발언인 것 같다”며 “회사 이미지는 물론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아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부분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등 특정 앱 사용을 금지하거나 색출하려는 시도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적용될 수 있다.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이 악화된 경우가 대상이기 때문. 블라인드 색출 시도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