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RTX 3080 그래픽카드 한 장이 RTX 3080 노트북보다 비싸다니..”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채굴에 필요한 그래픽카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가격이 3배 이상 뛰었는데, 암호화폐의 상승폭보다도 가파르다. 동급 그래픽 칩셋을 탑재한 노트북보다 그래픽카드 한 장이 더 비싸게 거래되는 등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2일 가격 비교 전문 플랫폼 다나와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차세대 칩셋인 지포스 RTX 30시리즈를 탑재한 그래픽카드의 가격이 일제히 급등하고 있다. 그래픽카드 전문 제조사인 갤럭시가 출시한 ‘GALAX 지포스 RTX 3080 EX Gamer WHITE’ 제품의 경우 최저가가 약 296만원이다. 이 제품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00만원 초반에 판매됐다. 하지만 지난 1월 중순 200만원대를 넘어섰고, 최근에는 300만원에도 구하기 힘든 제품이 됐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출시 당시 정가가 100만원 이하였던 MSI의 지포스 RTX3080 VENTUS 역시 오픈마켓에서 최저 3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심지어 동급의 그래픽칩셋이 탑재된 노트북 한 대가 그래픽카드 한 장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될 정도다. PC 제조사인 에이수스(ASUS)가 RTX 3080 그래픽칩셋을 탑재해 내놓은 ‘로그 제피러스 GA503’ 노트북은 가격이 280만원대다. 15.6인치 화면에 최대 8코어 CPU, 1TB의 저장장치를 탑재했다. 물론 노트북에 탑재되는 그래픽칩셋은 전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동급의 데스크탑 그래픽카드 대비 성능이 30~40% 떨어진다. 하지만 채굴을 제외한 게임 등 성능만 두고 보면 일반 이용자들은 체감하기 어렵다.
그래픽카드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암호화폐로 전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 결과다. 암호화폐 채굴은 컴퓨터에서 복잡한 수학 연산의 해결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때 성능 좋은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 특히 RTX 30 시리즈는 암호화폐의 한 종류인 이더리움 채굴에 있어 가장 가성비가 좋은 그래픽카드로 주목받아, 이른바 ‘채굴장에 끌려간 그래픽카드’로 명성이 자자하다.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올라 있다보니,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웃돈을 얹어 되파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중고거래앱 중고나라에는 아예 배송도 되지 않은 그래픽카드를 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하겠다는 글까지 등장했다. 입금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원래 판매처에 배송지 변경을 신청하겠다는 것이다.
재판매를 통한 차익을 노리고 그래픽카드를 휩쓸어가는 ‘민폐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암호화폐 채굴과 무관하게 그래픽카드를 찾는 게임 이용자 등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달 말께 암호화폐 시세자 주춤한 모습을 보이자, 소비자들은 ‘곧 그래픽카드 가격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일 오전 현재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가격은 24시간 전 대비 10% 가까이 급등세다. 미국 대형 은행인 시티그룹이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보고서를 내놓은 점이 영향을 미쳤다. 시티그룹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만큼 국제 무역에서 선택할 수 있는 통화가 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