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에 딸린 섬 ‘구도’.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출생 당시 겨우 30가구 정도 주민만 거주하던 아주 작은 섬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쪽잠을 잘 정도로 가정형편도 어려웠다. 김 의장이 국내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 벤처 창업가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 김 의장은 ‘배달의민족’을 국내 최대 배달 플랫폼에 올려놓고 4조8000억원 수준 규모의 스타트업 최대 인수합병(M&A)도 완성했다. 동시 조 단위 재산을 보유하게 된 김 의장은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최소 5000억원 이상을 기부하는 것이다.
앞서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자신의 재산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기부 규모는 약 5조원대로 추정된다. 김범수 의장도 단칸방에서 시작한 흙수저 출신 벤처 창업가다. 2남 3녀 맏이로 태어나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을 만큼 유년시절 형편이 어려웠다.
악조건을 딛고 성공 신화를 쓴 벤처 창업가들이 잇따라 대규모 ‘기부 선언’을 하면서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들의 기부 행렬이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촉매제 역할을 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봉진 의장과 그의 부인 설보미 씨는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기부 서약해 18일 서약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한국인 첫 사례다. 현재 24개국, 218명(부부, 가족 등 공동명의는 1명으로 산정)이 더 기빙 플레지를 통해 기부를 선언했다.
더 기빙 플레지는 2010년 8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재산 사회환원 약속을 하면서 시작된 자발적 기부 운동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CEO(최고경영자) 앨런 머스크, 영화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회장,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이 앞서 참여했다. 회원의 약 75%는 빈손으로 시작해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들이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재산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라는 두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에 최소 5억달러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
김 의장은 서약서에서 “저와 저의 아내는 죽기 전까지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며 “이 기부 선언문은 우리의 자식들에게 주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최고의 유산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또 기부 결심의 이유로 “대한민국에서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는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에, 어렵게 예술대학을 나온 제가 이만큼 이룬 것은 신의 축복과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10년 전 창업 초기 20명도 안되던 작은 회사를 운영할 때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기사를 보면서 만약 성공한다면 더 기빙 플레지 선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꿈꿨는데 무척 감격스럽다”며 “제가 꾸었던 꿈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도전하는 수많은 창업자들의 꿈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고 감회를 전했다.
김 의장은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하는 것과 함께 교육,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결,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자선단체를 돕는 조직을 만드는 일에 나설 계획이다. 또 기부 문화를 저해하는 인식적·제도적 문제 개선에 힘을 보태고 기부 문화 확산에 꾸준히 나설 것을 약속했다.
김 의장이 재산 절반 환원을 선언하면서 국내 성공 창업가들의 기부 행렬이 탄력을 받게 됐다. 김 의장에 앞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포문을 열었다. 김범수 의장은 국내 ‘주식부자’ 3위로 지난 10년 간 카카오톡을 ‘전 국민 메신저’ 반열에 올려놓고, 카카오를 시가총액 10위권에 100여개 계열사 보유 기업으로 일군 인터넷 업계 입지전적 인물이다.
기업가로서 대성공을 거둔 김 의장은 카톡 프로필 메시지에 ‘더 나은 세상’을 밝힐 정도로 사회 환원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지난해 3월 카톡 출시 10주년 기념 동영상에서 김 의장은 “카카오의 10년이 ‘좋은 기업’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위대한 기업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이달 말께 자신의 사회 공헌 계획과 관련한 크루(카카오 구성원)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이 간담회를 통해 김 의장이 최근 밝힌 재산 기부와 관련한 임직원들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제시될 예정이다.